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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도에 따른 자연변화의 한 현상이다
- 장자(외편) 제22편 지북유[10]-
“이 땅에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사람은 음도 아니고 양도 아니어서 하늘과 땅 사이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잠시 동안 사람으로 존재하지만, 결국은 그 근본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근본에서부터 본다면 삶이란 것은 기가 모여 있는 물건에 불과합니다. 비록 오래 살고, 일찍 죽는 차이가 있다지만 그 차이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짧은 시간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니 어찌 요임금은 성인이고 걸왕은 폭군이란 시비가 문제가 될 수 있겠습니까? 나무 열매나 풀의 열매도 원리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논리는 다 추구하기는 어렵지만 역시 그 원리에 의하여 서로 어울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인은 그 원리에 의한 변화를 당하게 되면 어기지 않고, 변화가 눈앞에 지나가도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에 조화함으로써 순응하는 것이 덕이며, 거기에 짝이 되어 순응하는 것이 도인 것입니다. 이 덕과 도에서 제왕이 생겨나고 왕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살고 있는 것은 마치 날쌘 말이 틈 앞을 지나는 것처럼 순간적인 일에 불과합니다. 만물은 자연의 변화에 따라서 모두가 생겨나고, 자연의 변화에 의하여 모두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자연의 변화에 의하여 태어나기도 하고 또 자연의 변화에 의하여 죽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물들은 서러워하고 인간들은 슬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이란 활집에서 활을 풀어놓는 것과 다름이 없는 자연의 변화이며, 책 껍질을 벗겨버리는 것과 같은 자연의 변화인 것입니다. 육체에서 혼백이 떨어지는 것인데, 혼백이 어디론가 가버리면 육체도 이를 따라 위대한 귀착점인 도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형체도 없는 상태에서 형체가 이룩되고 형체를 지닌 물건은 형체가 없는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다 같이 알고 있는 일이지만, 지극한 도에 이르려는 사람은 그 구별에 대하여 힘쓸 것이 못 됩니다. 이것에 대하여는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논하는 것이지만 지극한 도에 이르려는 사람은 논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에 대하여 논하면 지극한 도에 이르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란 분명히 보려고 하면 만나지 못하는 것이니, 이론을 펴는 것은 침묵을 지키는 것만 못한 것입니다. 도란 들어서 알 수 있는 것이 못 되며, 거기에 대하여 듣는 것은 귀를 막고 듣지 않는 것만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지혜와 감각을 떠나 도에 합치되는 것을 위대한 터득을 했다는 뜻에서 대득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 莊子(外篇) 第22篇 知北游[10]- 「中國有人焉, 非陰非陽, 處於天地之間, 直且爲人, 將反於宗. 自本觀之, 生者, 喑醋物也. 雖有壽夭, 相去幾何? 須臾之說也. 奚足以爲堯桀之是非! 果蓏有理, 人倫雖難, 所以相齒. 聖人遭之而不違, 過之而不守. 調而應之, 德也. 偶而應之, 道也. 帝之所興, 王之所起也.」 「人生天地之間, 若白駒之過郤, 忽然而已. 注然勃然, 莫不出焉. 油然漻然, 莫不入焉. 已化而生, 又化而死, 生物哀之, 人類悲之. 解其天弢, 墮其天[失+衣], 紛乎宛乎, 魂魄將往, 乃身從之, 乃大歸乎! 不形之形, 形之不形, 是人之所同知也, 非將至之所務也, 此衆人之所同論也. 彼至則不論, 論則不至. 明見无値, 辯不若黙. 道不可聞, 聞不若塞. 此之謂大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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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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