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제동행[師弟同行] 스승과 제자가 함께 간다는 뜻으로, 스승과 제자가 한 마음으로 배워나간다는 의미라서 학교에서 사제가 함께 하는 교육활동의 총칭으로 사용된다.
♞ 사제로[沙堤路] 재상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당(唐)나라 때의 풍속에 처음으로 재상이 된 사람은 그의 사제(私第)에서부터 성 동쪽 거리까지 모래로 길을 메웠는데, 그것을 일러 모래둑[沙堤]이라고 하였다.<唐故事>
♞ 사제조슬[仕齊操瑟] 제왕(齊王)이 비파를 싫어하는데, 제 나라에 벼슬하려는 사람이 비파를 가지고 문에 서 있는 지 3년이 되어도 들어가지 못했다. 객이 꾸짖기를 “왕은 피리를 좋아하는데 자네가 비파를 치니, 비파는 잘 쳐도 왕이 싫어함을 어쩌랴.”라고 하였다.
♞ 사조[姒姚] 조사(姚姒)를 거꾸로 쓴 것으로, 사(姒)는 하우(夏禹)의 성(姓), 조(姚)는 우순(虞舜)의 성, 순(舜)·우(禹)성군(聖君) 때 말씀과 글.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에 “위로 조와 사를 엿보건대 아득히 가이 없다[上規姚姒 渾渾無涯]”라고 하였다.
♞ 사조[謝眺] 남제(南齊) 사람. 자는 현휘(玄暉)이다. 시인(詩人). 특히 오언시(五言詩)를 잘 지어 시가 청아하고 아름다웠으며 글씨도 잘 썼다. 일찍이 선성 태수(宣城太守)로 있을 적에 산 남쪽에 높은 누대(樓臺)를 짓고 앞 산의 경치를 감상하였으므로, 후대에 이 누대를 사공루(謝公樓), 사루(謝樓)라 하고 그 산 이름을 사공산(謝公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고사가 있다. <南齊書 卷47 謝眺列傳> 참고로 이백(李白)의 시 제동계공유거(題東溪公幽居)에 “청산과 가까운 집 사조와 한가지요, 푸른 버들 드리운 문 도연명과 흡사하네[宅近靑山同謝朓 門垂碧柳似陶潛]”라는 표현이 있다.
♞ 사조[射潮] 북몽쇄언(北夢瑣言)에 “항주(杭州)에 해마다 조수가 밀려들므로 오월왕(吳越王) 전유(錢鏐)가 궁노(弓弩)를 설치하였다가 조수가 밀려들 적에 쏘니, 조수가 물러가 육지가 되었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