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韓子] 전국 시대 한비자(韓非子). 또는 그가 지은 책 한비자(韓非子)를 말하기도 한다.
♞ 한자개진간힐자[韓子豈眞奸黠者] 한유(韓愈)의 “관직도 없는 우리 동야, 너무도 쇠한 백발의 몸. 조금 교활한 나 한자, 장송에 붙은 덩굴인양 스스로 부끄러워.[東野不得官 白首誇龍鍾 韓子稍姦黠 自慙靑蒿倚長松]”라는 시구를 인용한 것이다. <韓昌藜集 卷5 醉留東野>
♞ 한자애련[韓子愛聯] 한자는 당 나라의 한유(韓愈)이며, 그가 석정연구시(石鼎聯句詩)를 짓고 서문(序文)을 붙인 것을 말한다. <韓昌黎集 補遺>
♞ 한자파리완[韓子玻瓈盌] 한유(韓愈)의 시에 “두세 명 도사가 그 사이에 자리잡고, 파리 옥배(玉盃)에 영액을 자꾸 따라 마시누나.[二三道士席其間 靈液屢進玻瓈盌]”라고 하였다. <韓昌黎集 卷4 遊靑龍寺 贈崔大補闕>
♞ 한장유[韓長孺] 지금의 하남성 민권현(民權顯)인 성안(成安) 사람으로 이름은 안국(安國)이다. 한나라 초기에는 양효왕 밑에서 중대부를 지냈으나 오초칠국의 란 때 오나라의 군사를 격퇴한 공로를 세워 그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무제 때 어사대부(御史大夫), 위위(衛尉)의 직을 지냈다. 후에 재관장군(材官將軍)에 임명되어 흉노를 방어하는 책임을 맡았으나 싸움에 패하고 이어서 병사했다.
♞ 한적[漢賊] 중국과 중국을 거역하는 역적을 묶은 말로, 제갈량(諸葛亮)의 후출사표(後出師表)에 “한 나라와 역적은 양립할 수 없다.[漢賊不兩立]”는 대목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