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회고택[河回故宅] 하회 마을은 경상북도 안동군 풍천면에 있는 마을로, 풍산유씨(豐山柳氏)의 세거지(世居地)인데 선조 때의 명상 유성룡(柳成龍)이 거처했던 옥연정사(玉淵精舍)·원지정사(遠志精舍)등 다수의 고택이 있다.
♞ 하후기의[夏侯妓衣] 발(簾)의 다른 말이다.
♞ 하후씨이송[夏后氏以松] 논어(論語) 팔일(八佾)에 “하후씨는 소나무를, 은 나라는 잣나무를, 주 나라는 밤나무를 심어서 사(社)의 신주(神主)로 삼았다.[夏后氏以松 殷人以柏 周人以栗]” 하였다. 여기서의 신주는 상고시대에 사[士地]의 신에게 제사지낼 때 신주의 표지(標識)로 삼았던 것을 말한다.
♞ 하후영[夏侯嬰]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172년에 죽은 서한의 창업공신이다. 패현 출신으로 고조가 사수정장으로 있을 때부터 친구이다. 후에 고조가 진나라에 대항하여 거병하여 패공이 되었을 때 같이 참여한 그는 칠대부(七大夫)가 되었고, 고조가 한왕이 봉해졌을 때는 열후(列侯)가 되어 소평후(召平侯)로 불리워졌다. 고조가 한중으로 들어가고 다시 나와 삼진을 평정할 때 수많은 공을 세웠다. 고조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여음후(汝陰侯)에 봉해졌다. 여태후가 죽자 대신들과 힘을 합해 여씨들의 란을 진압하고 대왕 유항(劉恒)을 옹립했다. 유항이 효문제다. 일찍이 등현의 현령을 지냈음으로 등공(滕公)이라 칭했다.
♞ 하후자[夏侯孜] 하후자(夏侯孜)는 당(唐) 나라 사람으로 자는 호학(好學)이다. 동평장사(同平章事)로 있었는데, 당사(堂史)가 서명(署名)을 하다가 하후자의 품안에 넘어져 죽었으므로 이 때문에 파직을 당하였다. <新唐書(신당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