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랑아대[中郞阿大] 숙부(叔父)를 가리킨 말이다. 진(晉) 나라 때 사안(謝安)의 형인 혁(奕)의 딸 도운(道韞)이 왕응지(王凝之)에게 시집을 간 처음 친정에 와서 매우 불쾌하게 여기자, 사안이 이르기를 “왕랑(王郞; 왕응지를 가리킴)은 일소(逸少; 王羲之의 자)의 아들인데 네가 무엇을 한하느냐?”하니, 사도운이 대답하기를 “우리 일문(一門)의 숙부로는 아대(阿大)와 중랑(中郞)이 있고, 뭇 종형제들로는 또 봉(封)·호(胡)·갈(羯)·말(末)이 있는데, 뜻밖에도 천지 사이에 왕랑 같은 자가 있었습니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아대는 곧 사안을 가리킨 말이고, 중랑은 곧 사안의 아우로서 역시 문재(文才)가 뛰어나서 간문제(簡文帝)로부터 특별히 종사중랑(從事中郞)에 발탁되었던 사만(謝萬)을 가리킨 말이다. <晋書 卷九十六>
♞ 중랑원[中郞願] 한(漢) 나라 때 중랑장(中郞將)에 임명된 채옹(蔡邕)처럼 내직(內職)에서 학사(學士)로 계속 근무하고 싶어하는 것을 말한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 “中郞石經後 八分蓋憔悴”라는 구절이 있다. <杜少陵詩集 卷22 送顧八分文學適洪吉州>
♞ 중랑지절[中郞持節] 깃대 지닌 중랑이란 한(漢)나라 때 중랑장(中郞將) 소무(蘇武)가 무제(武帝) 천한(天漢) 원년에 흉노(匈奴)에 사신으로 나갔다가 선우(單于)에게 강제로 붙잡혀 19년 동안 양치기 노릇을 하면서도 사신의 징표로 가지고 간 깃대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보존함으로써 한 나라에 대한 충성을 지켰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漢書 卷五十四 蘇武傳>
♞ 중랑초미금[中郞焦尾琴] 중랑은 후한(後漢) 때 중랑 벼슬을 지낸 채옹(蔡邕)을 이른다. 초미금은 곧 거문고를 가리킨 말로, 채옹이 일찍이 이웃 집에서 밥을 짓느라고 때는 오동나무가 타는 소리를 듣고는, 그 나무가 좋은 나무인 줄을 알고 그 타다 남은 오동나무를 얻어 거문고를 만들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 중랑해모금[中郞解摸金] 중랑은 곧 발구중랑(發邱中郞)인데, 조조(曹操)의 명을 받고 가는 곳마다 고분(古墳)을 파헤쳐 금은보화(金銀寶貨)를 취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