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닷컴ː옛글채집/옛글검색

하늘구경  



 

중서자[中庶子] ~ 중석[重席] ~ 중선[仲宣]
 글쓴이 : 하늘구경
조회 : 3,425  

중서자[中庶子] 주나라 때의 관직명이다. 제후들과 경대부들 소생의 서자(庶子)들만을 맡아 교육시키던 관서의 장이다. 상앙(商鞅)이 진나라로 들어 갈 때 위()나라에는 중서자라는 관직이 있었다. 서한 때는 태자부(太子府)에 속해 태자중서자(太子中庶子)라고 칭했다. 그 직책은 시중(侍中)과 같아 태자를 따라 다니며 곁에서 모셨다. 봉록은 일년에 600석이었다.

중서자[中庶子] 주나라가 설치한 관직으로 제후나 경(). 대부(大夫)들의 자식들 중 서자들의 교육을 담당했다. 후에 춘추와 전국을 거치면서 제후들도 따라서 설치했다.

중석[重席]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 대빙(戴憑)이 경학(經學)에 아주 밝았었다. 한번은 정조조하(正朝朝賀)차 백관(百官)이 모두 모였을 적에 임금이 군신(群臣)에게 명하여, ()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경의(經義)를 묻게 하되, 만일 뜻이 잘 통하지 못한 곳이 있을 경우에는 문득 그 사람의 자리[]를 빼앗아서 뜻이 잘 통하게 설명한 사람에게 보태어 주도록 하였다. 그러자 대빙이 경의에 제일 능통하여 50여 석()을 거듭 빼앗아 앉게 되었다는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七十九 戴憑傳>

중석몰촉[中石沒鏃] 쏜 화살이 돌에 깊이 박혔다는 뜻으로, 정신을 집중해서 전력을 다하면 어떤 일에도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중선[仲宣] 중선은 동한(東漢) 말기의 문장가 왕찬(王粲)의 자()이다. 난리를 피해 장안(長安)을 떠나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몸을 의탁하였을 때, 실의에 잠겨 타향을 떠돌면서 고향을 생각하는 절절한 심경을 담아, 그 유명한 등루부(登樓賦)를 지었다. 그 부()강산이 아름다우나, 내 고향이 아니로세.”라는 구절이 있다.

 

 



번호 제     목 조회
4709 중오[重五] ~ 중용[中庸] ~ 중용지도[中庸之道] 5920
4708 중아시[中阿詩] ~ 중앙정색[中央正色] ~ 중영[重英] 4036
4707 중소운망서[重霄霣望舒] ~ 중승상[中丞相] ~ 중심동소락[衆心同所樂] 3796
4706 중선금[仲宣襟] ~ 중선루[仲宣樓] ~ 중성[中聖] 5941
4705 중서자[中庶子] ~ 중석[重席] ~ 중선[仲宣] 3426
4704 중상모략[中傷謀略] ~ 중상지기[仲翔知己] ~ 중서삼책[仲舒三策] 4849
4703 중산[中山] ~ 중산방만낙양서[中山謗滿樂羊書] ~ 중산참방[中山讒謗] 5196
4702 중방제결[衆芳鶗鴂] ~ 중부[仲孚] ~ 중산[中散] 4987
4701 중루점괴후[中壘占乖候] ~ 중류격즙[中流擊楫] ~ 중묘[衆妙] 3296
4700 중려[重黎] ~ 중력황감경절물[中曆黃柑驚節物] ~ 중령군[中領軍] 4133
4699 중랑아대[中郞阿大] ~ 중랑지절[中郞持節] ~ 중랑초미금[中郞焦尾琴] 4845
4698 중달[仲達] ~ 중당[中唐] ~ 중동[重瞳] ~ 중랑녀[中郞女] 6634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    
 
 


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열자

한비자 / 육도삼략 / 소서 / 손자병법 / 전국책 / 설원 / 한서 / 고사성어 / 옛글사전

소창유기 / 격언연벽 / 채근담(명) / 채근담(건) / 명심보감(추) / 명심보감(법) / 옛글채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