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명[先鳴] 먼저 공을 세워 두각을 나타냈다는 말이다. 춘추 시대 진(晉) 나라 주작(州綽)이 제(齊) 나라와의 평음(平陰) 싸움에서 식작(殖綽)과 곽최(郭最)보다 앞서서 성(城)에 올라 닭이 울듯 크게 소리쳤다[平陰之役 先二子鳴]는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春秋左傳 襄公 21年>
♞ 선명도[蟬鳴稻] 올벼[早稻]의 별칭이다. 고려 때 이규보(李奎報)의 시(詩)에 “그 이름 어기지 않으려고 매미 우는 때를 기약했네. 눈으로 직접 새 곡식 보니 금년 일도 다했나 보구료[不欲負其名 趁得蟬鳴詩 眼見新穀升 今年事亦畢]”라고 하였다.
♞ 선모[旋毛] 말의 털결이 선회한 모양으로 된 것. 이아 주(爾雅 注)에 “선모가 배 아래에 젖꼭지처럼 나면 천리마이다.”라 하였다.
♞ 선묘실록[宣廟實錄]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을 말한다. 선조수정실록은 광해군 때 북인(北人)인 기자헌(奇自獻), 이이첨(李爾瞻) 등에 의하여 편찬된 선조실록의 내용이 공정치 못하다고 하여 인조 19년에 이식(李植)의 상소에 의하여 수정실록을 편찬하기로 결정하고 이식이 전담하여 편찬하였으나 이식이 다른 일로 파면되어 중단되었다. 그 뒤 효종 8년 3월에 수정실록청을 설치하고 김육(金堉), 윤순지(尹順之), 이일상(李一相), 채유후(蔡裕後) 등으로 하여금 편찬하게 하여 그해 9월에 완성을 보았다.
♞ 선문[羨門] 옛 선인(仙人)으로 이름은 자고(子高)이다. 전한서(前漢書)에 “시황(始皇)이 동으로 노닐면서 신선(神仙) 선문(羨門)의 무리를 구했다.”라 하였다.
♞ 선문비침[扇蚊飛枕] 후한(後漢)의 황향(黃香)이 아버지를 지극한 효도로 섬겨, 여름에는 잠자리에 부채질하여 드렸다 한 데서 온 말로, 아버지에게 효도하는 것을 말한다.
♞ 선문자[羨門子] 옛날 선인(仙人)인 선문자고(羨門子高)를 말하는데, 진 시황(秦始皇)이 일찍이 동해(東海)에 노닐면서 선인 선문의 무리를 찾았다 한다. <史記 秦始皇本紀>
♞ 선미[璿楣] 궁궐의 문미(門楣)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