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음아[山陰鵝] 왕희지가 거위를 무척 좋아했는데, 그때 산음(山陰)의 한 도사(道士)가 좋은 거위를 기르고 있었다. 희지가 가서 보고 마음에 들어 그 거위를 팔 것을 권하자 그 도사가 말하기를, “나에게 도덕경(道德經)을 써주면 이 거위들을 주겠노라.”하여, 희지는 그가 요구한 대로 다 써주고 그 거위를 가지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晉書 王羲之傳>
♞산음이현편[山陰理縣編] 남제(南齊) 때 부염(傅琰)이 산음령(山陰令)으로 있으면서 매우 선정을 베풀어 그 고을에서 신명(神明)으로 일컬어졌는데, 그의 부자(父子)가 똑같이 산음현을 잘 다스렸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이르기를, “부씨(傅氏) 집안에는 고을 다스리는 문서[理縣譜]가 있어 자손이 대대로 전한다.”한 데서 온 말이다. <南齊書․卷五十三>
♞산음진적[山陰陳迹] 왕희지(王羲之)가 3월 3일에 회계(會稽) 산음(山陰)에 있는 난정(蘭亭)에서 명사(名士) 40명과 놀면서 각각 시(詩)를 짓고 희지가 서문(序文)을 지었는데, 그 글에, “한 번 구부리고 한 번 우러러 보는 사이에 벌써 묵은 자취가 된다[俯仰之間 己成陳迹].”는 귀절이 있다.
♞산음회도흥[山陰回棹興] 진(晉) 나라 때 왕휘지(王徽之)가 산음(山陰)에 살았는데, 한밤중에 눈이 내리자 친구인 대규(戴逵)가 갑자기 생각났다. 이에 즉시 밤을 새워 배를 타고 대규가 사는 집 문앞까지 갔는데, 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되돌아왔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말하기를, “나는 흥이 나서 갔다가 흥이 다해 돌아온 것이다.”하였다. <世說新語 任誕>
♞산음흥[山陰興] 진(晉) 나라 왕휘지(王徽之 왕희지(王羲之)의 아들)가 산음(山陰) 땅에 살던 때, 구름이 걷히고 사방이 눈으로 덮여 달빛이 청랑한 밤 혼자 술을 마시며 좌사(左思)의 초은시(招隱詩)를 읊던 도중 갑자기 대규(戴逵)가 생각나 작은 배를 타고 밤새 섬(剡) 땅에 있는 대규의 집에 갔다가 문 앞에서 들어가지 않고 도로 돌아왔는데, 그 까닭을 물으니 “흥이 나서 왔다가 흥이 다해 갈 뿐[乘興而來 興盡而反]”이라고 했다 한다. <世說新語 任誕>
♞산이종차[散而鍾此] 서원여의 모란부(牡丹賦)에 “꽃 중에도 붉은 빛은 모란으로 다 뭉쳤네.[英之甚紅 鍾於牡丹]”라는 구절이 있다.
♞산인[散人] 세상에서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뜻의 겸사(謙辭)이다. 장자(莊子)에 쓸모없는 나무라는 뜻의 산목(散木)에 대한 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