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부각궁[嘉樹賦角弓] 각궁편(角弓篇)은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으로, 이 시는 임금이 소인들의 참소하는 말만 듣고 친족들을 멸시하므로, 친족들이 임금을 원망하여 부른 노래이다. 즉 춘추 시대 진(晉)나라 한선자(韓宣子)가 노(魯) 나라에 사신 갔을 때 노 나라 소공(昭公)이 베푼 향연에서 각궁편을 부르고, 이어 노 나라 계무자(季武子)의 집에서 베푼 주연에 참석했을 때 그 집에 아름다운 나무가 있으므로 한 선자가 이를 좋다고 칭찬하자, 계무자가 말하기를 “제가 이 나무를 잘 길러서, 선생께서 각궁편을 노래해 주신 정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左傳 昭公二年>
❍ 가수부시[假手賦詩] 남의 손을 빌어 시를 짓다. 수서(隋書) 유현전(劉炫傳)에 “유현(劉炫)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 말하기를 ‘공사(公私)간에 작성한 문장이나 서간에는 일찍이 남의 손을 빈 것이 없었다.”고 하며, 사통(史通) 재문편(載文篇)에, 위진(魏晉)시대 이래 거짓으로 썼거나 덧붙여 쓴 잘못이 다섯 가지가 있는데 그 세 번째가 ‘남의 손을 빌어 쓰기[假手]’라고 하였다. 엽소태(葉紹泰)는 “육조시대의 문장은 오직 양(梁)나라 때에만 성황을 이루었다 할 만한데, 유한 귀족자제들이 조정 선비들의 수치거리였던 것은 이 명인집(名人集) 속에도 남이 대신해서 지은 작품이 많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 가수전[嘉樹傳] 춘추 시대 진(晉)나라 한선자(韓宣子)가 노(魯)나라로 빙문(聘問) 가서 시경(詩經) 각궁(角弓)을 읊었다. 그리고 계무자(季武子)의 집에서 연회를 베풀 때 뜰에 한 그루 좋은 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 한선자가 찬미하니, 계무자가 “숙(宿)이 감히 이 나무를 잘 길러서 각궁 시를 잊지 않고 기억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라고 하고는 시경(詩經)의 감당(甘棠)을 외웠다. 이에 한선자가 “기(起)는 감당할 수 없으니, 소공(召公)에는 도저히 미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두보(杜甫)의 ‘겨울날 이백을 생각하며[冬日有懷李白]’에 “가수라 한 좌전(左傳)을 다시 찾으며 각궁이란 시를 잊지 않노라.[更尋嘉樹傳, 不忘角弓詩.]”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