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공[伯恭] 백공은 송(宋) 나라 여조겸(呂祖謙)의 자(字)이다. 병석에서 논어(論語)를 읽다가, 위령공편(衛靈公篇)의 “자신의 잘못은 혹독하게 꾸짖고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이해해 주도록 노력하라.[躬自厚而薄責於人]”는 공자의 말을 접하고는, 홀연히 깨달음이 생기면서 마음이 평온해졌다고 한다. <宋元學案 卷51>
♞백공[伯恭] 백공은 원위(元魏) 때 고윤(高允)의 자이다. 원위 태무제(元魏太武帝) 때 요동공(遼東公) 적흑자(翟黑子)가 뇌물을 받은 일이 발각되자, 저작랑 고윤(高允)에게 의논하기를 “주상께서 나에게 물으시면 어떻게 대답해야겠는가?”하자, 고윤이 “사실대로 자백하면 혹 용서를 받을 수도 있겠거니와, 거듭 주상을 속여서는 안 된다.”고 하였는데, 적흑자는 끝내 사실대로 자백하지 않았다가 처형되었다. 그런데 또 고윤은 국서(國書)를 수찬할 때 직필(直筆)한 일로 매우 위태롭게 되자, 태자(太子)가 자기 사부인 고윤을 살리려는 생각에서 그에게 주상께 약간의 거짓말을 하도록 권유하였으나, 그는 태자의 말을 듣지 않고 사실대로 자백하여 오히려 주상으로부터 정직하다는 칭찬을 받고 죽음을 면하였는데, 그는 물러나와 어떤 이에게 말하기를 “내가 태자의 지도를 따르지 않은 것은 적흑자를 저버릴까 염려해서였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小學 善行>
♞백공[白公] 초(楚) 나라 원왕(元王)이 목생(穆生)․백생(白生)․신공(申公)을 대부로 삼았는데, 목생이 술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술자리가 있으면 으레 따로 단술[醴酒]을 마련하였었다. 그런데 그의 손자가 즉위하고는 단술을 따로 마련하는 일이 없어지자 목생이 말하기를 “이렇게 차츰 대접이 박해지니 떠날 수밖에 없다.”하고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신공과 백생은 억지로 나오게 하면서 말하기를, “선왕(先王)의 은덕을 생각해서라도 그럴 수가 있는가?”하였다. 백생은 곧 백공(白公)을 가리킨다. <漢書 卷三十六 楚元王傳>
♞백공육첩[白孔六帖] 서명(書名), 이는 당(唐) 나라 백거이(白居易)의 육첩(六帖) 30권과 송(宋) 나라 공전(孔傳)의 속육첨(續六帖) 30권을 합해서 이를 1백 권으로 나누어 놓은 것인데, 곧 많은 분량의 서물(書物)을 의미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