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下獨酌四首其四[월하독작4수4] 달 아래 홀로 술을 따르다
- 李白[이백] -
窮愁千萬端[궁수천만단] 곤궁의 시름은 천만 가지요
美酒三百杯[미주삼백배] 맛이 좋은 술은 삼백 잔이라
愁多酒雖少[수다주수소] 시름은 많고 술은 비록 적으나
酒傾愁不來[주경수불래] 술 잔 기울이면 시름 아니 와
所以知酒聖[소이지주성] 하여 술을 성인으로 알았으니
酒酣心自開[주감심자개] 얼큰 취하면 마음 절로 열려라
辭粟臥首陽[사속와수양] 곡기 끊고 수양산 숨은 이제나
屢空飢顔回[누공기안회] 누누이 뒤주 비어 굶은 안회나
當代不樂飮[당대불락음] 당대에 술 마시기 즐기지 않고
虛名安用哉[허명안용재] 헛된 이름 남겨서 어디에 썼나
蟹螯卽金液[해오즉금액] 게의 집게발 곧 신선의 약이요
糟丘是蓬萊[조구시봉래] 술지게미 언덕 바로 봉래산이라
且須飮美酒[저수음미주] 모름지기 맛 좋은 술이나 마시며
乘月醉高臺[승월취고대] 달을 타고 취해 높은 대에 오르리
❍ 궁수[窮愁] 궁핍(窮乏)을 겪는 근심. 곤궁하여 생기는 근심. 곤궁하고 비참함 속에 시름으로 지내는 생활. 전국 시대 유세사(遊說士)였던 우경(虞卿)이 일찍이 조(趙)나라의 재상이 되었다가, 친구인 위제(魏齊)의 일로 인하여 상인(相印)을 내던지고 위제와 함께 양(梁)으로 가서 곤궁하게 지내면서 이른바 우씨춘추(虞氏春秋)라는 책을 저술했던바, 태사공(太史公)은 그를 평론하기를 “우경은 곤궁한 시름이 아니었다면 또한 글을 저술해서 스스로 후세에 드러내지 못했을 것이다.[虞卿非窮愁 亦不能著書以自見於後世云]”라고 하였다. <史記 卷76 虞卿列傳>
❍ 소이[所以] 까닭. 일이 생기게 된 원인이나 조건. 어떤 일을 하게 된 이유. 그래서. 그러므로. 그런 까닭에. 때문에. ~한 이유는. 가이(可以: ~할 수 있다. 가능하다.) 인과 관계의 문장에서 원인과 결과나 결론을 나타낸다.
❍ 주성[酒聖] 술 가운데 성인(聖人)으로, 맑은 술, 즉 청주(淸酒)를 이른다. 탁주(濁酒)는 현인(賢人)이라 한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서막전(徐邈傳)에 “평상시에 취객들이 술 가운데 청주를 성인에, 탁주는 현인에 비할 수 있다고 하였다.[平日醉客謂酒淸者爲聖人, 濁者爲賢人.]”라고 하였으며, 예문유취(藝文類聚)에 “태조(太祖 조조曹操)이 금주령을 내리니 사람들이 몰래 술을 마시면서도 술이란 말을 꺼내기 어려워지자 탁주를 현자라 하고 청주를 성인이라 하였다.[太祖禁酒, 而人竊飮之, 故難言酒, 以濁酒爲賢者, 清酒爲聖人.]”라고 하였다. 참고로, 한말(漢末)에 기근이 심해서 조조(曹操)가 금주령을 내리자 주객(酒客)들이 술이라는 말을 피하기 위하여 청주(淸酒)를 성인(聖人)이라 하고 탁주(濁酒)를 현인(賢人)이라고 불렀다. 이때 위(魏)나라 상서랑(尙書郞) 서막(徐邈)이 몹시 술을 좋아한 나머지, 금주령을 어기고 술을 마시다 적발되어 교위(校尉) 조달(趙達)이 가서 조사(曹事)를 묻자 “성인에게 걸려들었다.[中聖人]”라고 익살을 부렸다. 조달이 이 사실을 아뢰자, 태조(太祖 조조曹操)는 서막이 성인으로 자처한 것으로 알고 크게 노하였는데, 선우보(鮮于輔)가 앞으로 나와 ‘취객은 맑은 술을 성인이라 하고 탁한 술을 현인이라고 하니, 서막이 성인(청주)에 취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뒤에 문제(文帝)가 서막을 보고는 “요즘도 성인에게 걸려드는가?[頗復中聖人不]”라고 묻자, “아직도 자신을 혼내지 못하고 때때로 다시 걸려들곤 합니다.[不能自懲 時復中之]”라고 답변한 고사가 전한다. <三國志 卷27 魏書 徐邈傳>
❍ 주감[酒酣] 술을 즐김. 술에 취함. 술판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상태. 또는 술에 거나하게 취한 상태.
❍ 사속와수양[辭粟臥首陽] 곡식을 사양하고 수양산에 은거함. 고죽국(孤竹國)의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지조를 지키기 위해 수양산(首陽山)에서 주(周)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며 고사리를 캐어 먹다가 굶어서 죽었다는 고사를 인용하였다.
❍ 누공[屢空] 쌀독이 자주 빈다는 말로 살림살이가 빈궁한 것을 말한다. 논어(論語) 옹야(雍也)에 공자가 “한 그릇 밥과 한 주발 국으로 누추한 곳에서 사는 고생을 다른 사람은 감내하지 못하는데, 안회(顔回)는 그렇게 사는 낙을 고치지 않았다.[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라고 하였고, 논어(論語) 선진(先進)에 “안회는 도(道)에는 거의 이르렀으나, 양식이 자주 떨어졌다.[回也, 其庶乎, 屢空.]”라고 하였다. 후에는 안빈낙도의 대명사로 쓰였다. <論語 先進>
❍ 누공기안회[屢空飢顏回] 누공(屢空)은 쌀독이 자주 비는 어려운 처지(處地)를 이른다. 도연명(陶淵明)의 시 음주(飮酒) 제11수에는 “안회는 끼니 자주 걸러 오래 살지 못했다.[屢空不獲年]”는 표현이 있다. 참고로, 사기(史記) 권61 백이열전(伯夷列傳)에 “백이와 숙제는 선인이라 할 만한데, 어질고 고결한 행실이 이와 같았는데도 굶어 죽었고, 70명의 문도 중에 공자께서 유독 안회가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칭찬하였는데도 안회는 자주 굶으며 술지게미조차 싫어하지 않다가 일찍 죽었으니, 하늘이 선인에게 보답한다는 것에 비추어보면 어떠한가. 도척은 날마다 죄 없는 자를 죽이고 사람의 살을 회쳐 먹으며 포악함을 자행했고, 수천 명의 무리를 모아 천하를 횡행했는데도 결국 수명대로 살다 죽었으니, 이것은 무슨 덕을 따른 것인가.[若伯夷叔齊 可謂善人者非耶 積仁絜行如此而餓死 且七十子之徒 仲尼獨薦顔淵爲好學 然回也屢空 糟糠不厭而卒蚤夭 天之報施善人 其何如哉 盜跖 日殺不辜 肝人之肉 暴戾恣睢 聚黨數千人 橫行天下 竟以壽終 是遵何德哉]”라고 하였다.
❍ 안용재[安用哉] 어디에 쓰리오. 安은 ‘어디에’라는 뜻이다. 哉는 ~일 것인가. ~리오.
❍ 해오[蟹螯] 게의 집게발. 게의 집게발 속에 든 속살로 진미의 한 가지. 진(晉)나라 때 문신 필탁(畢卓)은 술을 몹시 즐겨 주호(酒豪)로 이름이 높았던바, 그가 이부랑(吏部郞)으로 있을 때 한번은 그 이웃집에 술이 익은 것을 알고는 밤중에 그 항아리 곁으로 가서 술을 실컷 훔쳐 마시고 그 자리에서 잠이 들어 마침내 술 관장하는 사람에게 붙들려서 꽁꽁 묶여 있다가 다음 날 아침에야 풀려난 일이 있기까지 했다. 그가 일찍이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술을 수백 곡의 배에 가득 싣고, 사철 맛 좋은 음식들을 배의 양쪽 머리에 쌓아 두고, 오른손으로는 술잔을 들고, 왼손에는 게의 집게 다리를 들고서 술 실은 배에 둥둥 떠서 노닌다면 일생을 마치기에 넉넉할 것이다.[得酒滿數百斛船 四時甘味置兩頭 右手持酒杯 左手持蟹螯 拍浮酒船中 便足了一生矣]”라고 했던 고사가 있다. <晉書 卷49 畢卓列傳>
❍ 금액[金液] 본래는 도사(道士)가 복용하는 일종의 단약(丹藥)을 지칭하고, 또는 좋은 술[美酒]을 지칭하기도 한다. 전설상의 선약(仙藥)으로, 반 냥을 먹으면 장수를 누리고 한 냥을 먹으면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고 한다. 신선이나 도사가 금액(金液)과 단사(丹砂)로 불로장생(不老長生)하는 영약(靈藥)인 금단(金丹)을 제조한다고 한다.
❍ 조구[糟丘] 술지게미 언덕. 술 찌꺼기를 쌓아 놓은 것이 언덕을 이루었다는 말이다. 한시외전(韓詩外傳) 권4에 “걸 임금은 술로 못을 만들어 배도 띄울 만하였고, 술지게미 언덕은 높기가 10리를 바라볼 만하였는데, 소처럼 둘러서서 술을 마시는 자가 3천 인이나 되었다.[桀爲酒池 可以運舟 糟丘足以望十里 而牛飮者三千人]”라고 하였고, 신서(新序)의 절사(節士)편에 “걸왕이 술로 연못을 만들었는데 배도 띄울 수 있을 정도였고, 쌓아놓은 술지게미는 칠 리 밖에서도 보였다.[桀爲酒池 足以運舟 糟丘足以望七里]”라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또, 태공육도(太公六韜)에 의하면, 상(商) 나라의 폭군 주(紂)는 도읍에 술로 채운 못[酒池]을 만들고 술지게미로 된 언덕[糟丘]을 따라 배를 돌리니 소처럼 몸을 수그려 술을 마시는 자가 3,0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