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릉유초[茂陵遺草] 한(漢) 나라의 사마상여(司馬相如)가 남긴 봉선(封禪)에 대한 글을 말한다. 상여가 병이 들어 효문원 영(孝文園令)을 그만두고 무릉(茂陵)에서 여생을 보냈으므로, 상여의 별칭으로 보통 무릉을 쓰게 되었다. 그가 죽고 난 뒤에 한 무제(漢武帝)가 사신을 보내 그의 저술을 모두 가져오게 하였는데, 오직 황제에게 봉선(封禪)하기를 권하는 글 한 편만이 남아 있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 무릉인의운운대[茂陵仁義云云對] 무릉(茂陵)은 한무제(漢武帝)이다. 무제가 조정에서 여러 신하들에게 “내가 이러이러하려 한다.”라 하니, 급암(汲黯)이 나서며 “폐하께서 안으로는 욕심이 많으면서 경으로 인의(仁義)를 베풀려 하시니 어찌 요순(堯舜)이 정치를 본받으려 하십니까.”라고 하였다.
♞ 무릉제주[茂陸題柱] 무릉은 한(漢) 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만년(晩年)에 살았던 곳으로, 이후 사마상여의 대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사마상여가 처음에 촉(蜀) 땅을 떠나 장안(長安)으로 향할 적에, 성도(成都)의 승선교(昇仙橋) 다리 기둥에 시를 적어 놓기를 “화려한 고관의 수레를 타지 않으면 이 다리를 건너서 돌아오지 않으리라.”라고 했던 고사가 있다. <華陽國志 蜀志>
♞ 무리간화[霧裡看花] 두보(杜甫)의 시에 “봄 물결에 배를 띄우니 하늘 위에 앉은 듯 늙은이 꽃구경이 안개 속의 그림일러라.”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