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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조【羅趙】서법(書法)의 명가(名家)로 일컬어졌던 후한의 나휘(羅暉)와 조습(趙襲)의 병칭인데, 장지(張芝)가 이들을 평하면서 “내가 위로 최(崔)ㆍ두(杜)와 견주기에는 부족하다마는, 아래로 나(羅)ㆍ조(趙)와 비교한다면 여유가 있다.”라고 한 고사가 전한다. 《法書要錄 卷1 引 採古來能書人名》 참고로 소식(蘇軾)의 시에도 “종요(鍾繇)와 장지(張芝)에 뒤지지 않는다고 그대 자부하는데, 나 역시 나휘나 조습에 비한다면 우월하다오.[不減鍾張君自足 下方羅趙我亦優]”라는 표현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6 石蒼舒醉墨堂》 나졸【懶拙】게으르고 졸렬하여 세상의 공명(功名)에 뜻이 없는 것을 말한다. 나찬【懶瓚】원(元) 나라 무석(無錫) 사람인 예찬(倪瓚)을 말함. 호는 운림(雲林)으로 시ㆍ서ㆍ화가 삼절(三絶)이었으며, 일찍이 난찬(懶瓚)이라 서명하였음. 나체【拿遞】벼슬아치가 죄로 인해 붙잡혀서 갈리는 일. 나타제호【懶惰啼呼】도연명이 아들을 책망하는 뜻에서 지은 책자(責子)라는 시에 “아서(阿舒)는 벌써 나이 열여섯이건만 나태하여 아직 배필이 없네.” 하였고, 서인효전찬(庶人孝傳贊)에서는 “은도(殷陶)는 여남(汝南) 사람으로 나이 열두 살에 부친상을 당하였는데 마침 큰 뱀이 집의 문에 가로누워 있었다. 이에 친척들이 모두 위험하다고 자리를 피하라 하였으나 그는 아버지의 영구(靈柩)가 있으므로 피할 수 없다 하면서 더욱 크게 슬피 울었다.” 하였다. 나필【羅泌】송(宋) 나라 사람. 자는 장원(長遠), 노사(路史) 47권을 지었는데 넓은 인용과 아름다운 문장으로 국명(國名)을 고증한 것은 더욱 정미롭다. 나함택사【羅含宅舍】진(晉) 나라 나함이 덕망이 높아 관사(官舍)에 있을 적에는 흰 참새가 모여들었고 치사(致仕)하고 나서 집에 거할 적에는 난초와 국화가 홀연히 뜰에 무더기로 피었다는 고사가 있다. 《晉書 卷92 文苑傳 羅含傳》 나향독우경출주【懶向督郵傾秫酒】진(晉) 나라 때 도잠(陶潛)이 팽택령(彭澤令)으로 있을 적에 팽택현의 공전(公田)에 모두 차조[秫]만 심게 하면서 말하기를 “나에게 항상 술에 취하게만 해주면 만족하겠다.” 하였고, 또 그 후에는 군(郡)에서 독우(督郵 지방 감찰관)가 나왔을 때, 아전이 관복을 정제하고 독우를 알현해야 한다고 말하자, 도잠이 탄식하기를 “나는 오두미(五斗米) 녹봉 때문에 허리를 굽혀 향리(鄕里)의 소인(小人)을 섬길 수 없다.” 하고는, 즉시 인끈을 풀어 던지고 돌아갔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九十四》 낙가산【洛伽山】남해(南海)의 보타 낙가산(普陀洛伽山)에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머물고 있다. 낙강【樂康】편안하다 낙건【洛建】정자(程子)와 주자를 말함. 정자는 낙양(洛陽)에서 살고 주자는 복건(福建)에서 살았으므로 한 말임. 낙계기남【樂啓期男】공자(孔子)가 태산(泰山)에서 영계기(榮啓期)가 녹구(鹿裘)를 입고 새끼 두르고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는 것을 보고 무엇이 그리 즐거우냐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하늘이 만물을 내매 사람이 가장 귀한데 내가 사람이 되었으니 한 가지 낙이고, 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천한데 내가 남자가 되었으니 두 가지 낙이고, 사람이 나서 일월을 보지 못하고 강보에서 죽는 자가 많은데 내 나이 90이니 이것이 세 가지 낙이다.” 하였다. 《列子 天瑞》
05/10/15/20/25/30/35/40/45/5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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