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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
차간【叉磵】서로 교차한 시내를 말함. 차계기환【借鷄騎還】닭을 빌려 타고 돌아간다는 뜻. 손님을 박대하는 것을 비꼰다는 뜻의 고사성어. 차고【차股】차고는 절차고(折釵股)로 필법을 이름. 차공광【次公狂】한(漢) 나라 개관요(蓋寬饒)의 자(字)이다. 황실의 외척인 평은후(平恩侯) 허백(許伯)이 새로 집을 짓고 입택(入宅)하여 잔치를 베풀고 개관요를 초청하니 마지못해 참석하였는데 그에게 친히 술을 권하자, 개관요가 “나에게 술을 많이 따르지 마시오. 나는 술미치광이오.[無多酌我 我乃酒狂]”고 하자, 승상 위후(魏侯)가 웃으면서 그의 강직한 성품을 빗대어 놀리기를 “차공은 깨어도 미친 사람이니, 꼭 술 때문에 미치겠는가.[次公醒而狂 何必酒也]”라고 한 고사가 전한다. 《漢書 蓋寬饒傳》 차공하사작무다【次公何事酌無多】한(漢) 나라 합관요(蓋寬饒)의 자(字)이다. 귀족 허백(許伯)의 집 연회에 갔더니, 허백이 제 손으로 술을 부어 권하였다. 관요는, “나한테 술잔을 많이 권하지 마시요. 나는 주광(酒狂)이 있소.” 하였다. 승상(丞相) 위상(魏相)이 옆에 있다가 웃으며, “차공(次公)은 깨었을 때에도 미쳤는데 하필 술만이랴.” 하였다. 차과창【差科瘡】차과(差科)의 헌데란 곧 조세(租稅) 독촉으로 매맞은 데의 상처를 말한 것으로, 소식(蘇軾)의 오금언시(五禽言詩)에 “어젯밤 남산에 비가 와서 서쪽 시내를 건널 수 없는데 시냇가의 포곡조가 나에게 해진 바지 벗으라 하네 그 말 따라 바지 벗고 찬 물에 들어가니 조세 독촉에 매맞아 다친 데가 물속에 비춰 보이네[昨夜南山雨 西溪不可渡 溪邊布穀兒 勸我脫破袴 不辭脫袴溪水寒 水中照見催租瘢]” 한 데서 온 말이다. 《蘇東坡集 卷二十》 차구【借寇】차구는 곧 구순(寇恂)을 빈다는 뜻으로, 백성들이 지방관의 유임(留任)을 간절히 바라는 것을 이름. 후한 때 구순이 일찍이 영천태수(潁川太守)를 지냈는데, 그 뒤에 광무제(光武帝)를 따라 영천(潁川)의 적(賊)들을 평정하고 돌아오려 할 적에 백성들이 광무제의 수레 앞을 가로막고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구군(寇君)을 이 영천에 1년만 더 빌려 주소서.” 하며 구순을 1년 동안만 더 그곳에 유임시켜 달라고 애원했던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寇恂傳》 차군【此君】대나무의 별칭이다. 동진(東晉)의 왕희지(王羲之)가 대나무를 몹시도 사랑하여 사는 곳마다 대나무를 심었는데, 남의 빈 집에 잠깐 거처하게 되었을 때에도 대나무를 심어 놓았다. 다른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대나무를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어찌 하루인들 차군(此君)이 없어서야 되겠는가.[何可一日無此君]”라고 했던 고사가 전한다. 《晉書 王羲之傳》 차군상대억상군【此君相對憶湘君】차군은 대[竹]의 이칭(異稱)이고, 상군은 순(舜) 임금의 두 비(妃)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말한다. 순 임금이 죽었을 때 아황ㆍ여영 두 비가 소상강(瀟湘江) 가에서 슬피 울어, 떨어진 눈물이 대나무에 배어 얼룩이 져서 반죽(斑竹)이 되었다고 한다. 소상반죽(瀟湘斑竹). 차군정【此君亭】차군정은 화순현 관아에 있던 정자의 이름이다. 차군헌【此君軒】차군은 대[竹]의 별칭으로, 진(晉) 나라 왕휘지(王徽之)가 일찍이 빈 집에 대를 심게 하자, 어떤 이가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어찌 하루인들 차군(此君)이 없어서 되겠는가.”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소식(蘇軾)에게는 차군헌시(此君軒詩)가 있다. 차군휴아【此君携兒】차군은 대나무를 말한다. 진서(晉書) 왕휘지전(王徽之傳)에 “일찍이 빈집에 있으면서 문득 대나무를 심으니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었으나 대답하지 않고 그 대나무를 가리키며 ‘어떻게 하루라도 이 군[此君]이 없을 수 있겠는가.’ 했다.”는 말이 있다. 아이를 데리고 있다는 것은 더부룩한 대순이 마치 어른이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것과 흡사하므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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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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