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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곽궤【南郭几】은자(隱者)의 안석(案席)을 말한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南郭子綦 隱几而坐 仰天而噓 荅焉似喪其耦”라 하였다. 남곽궤전문지뢰【南郭几前聞地籟】수양이 높은 경지에 이름을 비유한 말이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남곽자기(南郭子綦)가 안석에 기대앉아서 멍하니 마치 자신조차도 잊어버린 것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짓고 있자, 안성자유(顔成子游)가 그 연유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너는 사람들의 피리 소리는 들었지만 땅의 바람 소리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한 데서 온 말인데, 곧 남곽자기는 천지의 대기(大氣)로 불어내는 바람 소리를 듣고 깨달은 경지에 이른 것이다. 땅의 바람 소리란 곧 대지(大地)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리이다. 남곽남취【南郭濫吹】학문과 기예에 전문적 지식과 체계나 조리도 없이 함부로 날뛰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남곽람우【南郭濫釪】능력이 없는 사람이 능력이 있는 것처럼 속여 외람되이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는 뜻의 고사성어. 남곽목【南郭木】고목나무처럼 흔들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남곽자기(南郭子綦)가 궤에 기대앉아서 하늘을 쳐다보며 멍하니 자기 몸을 잊은 것 같았다. 안성자유(顔成子游)가 앞에서 모시다가 ‘형상을 고목(枯木)과 같이 할 수 있으며 마음을 재[灰]와 같이 할 수 있습니까?’ 했다.” 하였다. 남곽병수【南郭病叟】호가 남곽인 박동열(朴東說)을 말함. 남곽선생만념회【南郭先生萬念灰】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南郭先生 …… 心固可使如死灰乎”라는 말이 있다. 남곽충금망물아【南郭冲襟忘物我】남곽자기(南郭子綦)처럼 주객(主客)을 초월한 경지를 지녔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南郭子綦 隱几而坐 仰天而噓 嗒焉似喪其耦”라 하였고, “今者 吾喪我”라 하였는데, ‘耦’와 ‘我’가 바로 물아(物我) 즉 주객(主客)을 표현하는 말이다. 남곽취우【南郭吹竽】재주가 없으면서 지위에 거하여 자리만 채운다는 뜻. 한비자(韓非子) 내저(內儲)에 “제 선왕(齊宣王)이 피리 부는 사람 3백인을 모으려 했는데 남곽 처사가 자기도 피리를 불겠다 하니 왕이 기뻐하여 특대우를 하였다. 그 후 선왕(宣王)이 죽고 민왕(湣王)이 임금이 되어 일일이 피리를 듣고자 하니 남곽 처사는 도망갔다. 남관【南冠】고국(故國)을 그리워함을 비유한 말이다. 남관은 남방 초(楚) 나라 사람의 관으로, 춘추 시대 초나라 종의(鍾儀)가 진(晉) 나라에 포로로 갇혀 있으면서도 항상 고국을 그리워하여 초나라의 관을 썼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左傳 成公 九年》 남관객마집【藍關客馬縶】한유(韓愈)가 좌천되어 지방으로 가다가 남전관에 이르러 지은 시에, “구름 가린 진령에 집은 어디 있는고. 남전관(藍田關)에 눈이 쌓여 말이 길을 멎어라.” 하였다. 남관북교【南冠北窖】남쪽과 북쪽으로 몸이 묶여 사로잡혀 가는 것을 말한다. 춘추 시대 초(楚) 나라 악공인 종의(鍾儀)가 진(晉) 나라에 잡혀가서도 계속 남관(南冠)을 쓰고 있었다는 고사와, 한(漢) 나라 소무(蘇武)가 흉노의 선우(單于)에게 억류된 채 땅속 움집[窖]에 갇혀 있었던 고사가 있다. 《左傳 成公 9年ㆍ漢書 卷54 蘇建傳》 남관설【藍關雪】당(唐) 나라 한유(韓愈)가 불골표(佛骨表)를 드리고 멀리 조주(潮州) 8천 리를 귀양가서 지은 시의 한 연(聯). “구름이 진령(秦嶺)에 비꼈는데 집은 어디에 있는고. 눈이 남관(藍關)에 쌓였는데 말도 걸음을 못 걷는다[橫泰嶺家佈佐 雪藍關馬不前].” 했다. 남관설옹【藍關雪擁】남관은 남전관(藍田關)의 준말임. 당(唐) 나라 한유(韓愈)의 `좌천되어 남관에 이르러서 질손 상에게 보여 준 시[左遷至藍關示姪孫湘詩]`에 “…… 구름은 진령을 가로질러라 집은 어디 있는고, 눈은 남관을 가로막아 말이 가지를 못하네. …… [雪橫秦嶺家何在 雪擁藍關馬不前]" 한 데서 온 말이다. 《韓昌黎集 卷十》 남관수【南冠囚】좌씨(左氏) 성구(成九)에 “진후(晉侯)가 ‘남관(南冠)을 쓰고 포로가 된 사람은 누구냐?’고 묻자, 유사(有司)가 ‘정(鄭) 나라 사람이 바친 초(楚) 나라 죄수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한 데서 나온 말로, 본래 포로의 신세를 말한다. 남관영【藍關詠】당(唐) 나라 한유(韓愈)가 조주(潮州)로 좌천되어 내려가다가 남관에 이르러서 지은 칠언 율시를 말하는데, 참고로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一封朝秦九重天 夕貶潮州路八千 欲爲聖明除弊事 肯將衰朽惜殘年 雲橫秦嶺家何在 雪擁藍關馬不前 知汝遠來應有意 好收吾骨瘴江邊” 《韓昌黎集 卷10 左遷至藍關 示姪孫湘》 남관집자동【南冠縶自同】죄인의 신세가 되었다는 말. 원의는 포로라는 말인데, 좌전(左傳) 성공(成公) 9년(九年)에 “초(楚) 나라의 종의(鍾儀)가 남관을 쓰고 포로로 잡혔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인데, 남관은 남쪽 지방 초(楚)의 관이라는 말. 남관초수【南冠楚囚】남관(南冠)은 춘추시대 초 나라에서 쓰는 관이고, 초수(楚囚)는 초 나라의 죄수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 성공(成公) 9년의 “진후(晉侯)가 군영을 순시하던 중에 종의(鍾儀)를 보고 유사(有司)에게 묻기를 ‘남관을 쓰고 구속된 저자는 누구냐?’ 하자, 대답하기를 ‘정(鄭) 나라 사람이 바친 초 나라 죄수입니다.’ 하였다.”에서 나온 말로, 죄를 짓고 구류된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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