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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백석【南山白石】춘추 시대 제(齊) 나라 영척(甯戚)이 소[牛]를 기르고 있을 때 소뿔을 두드리면서 “남산은 선명하고 백석은 찬란하도다. 태어나서 요순 세상 만나지 못하니 긴 밤이 아득하다, 어느 때 밝아질까.[南山矸 白石爛 生不逢堯舜也 長夜漫漫何時旦]" 라고 노래한 것을 말한다. 《蒙求 中 甯戚扣角》 남산석【南山石】가난한 영척(寗戚)이 소를 치면서 불렀다는 노래. 제(齊) 나라 환공(桓公)이 그 노래를 듣고 불러서 재상을 삼았다 한다. 남산수【南山壽】시경(詩經)에, “남산(南山)이 무너지지 않는 것처럼 오래 사시오.” 하는 구절이 있다. 남산시【南山詩】총 2백 4구로 일대(一代)의 일을 서술한 한유(韓愈)의 시. 왕안석(王安石)같은 사람은 남산시가 두보(杜甫)의 북정시(北征詩)보다 좋다고 하였음. 남산은표【南山隱豹】남산의 흑표범이 자신의 아름다운 무늬를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비 내리고 안개 낀 일주일 동안 배고픔도 참고 전혀 밖에 나가서 사냥도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보통 현사(賢士)가 산속에 은거하는 것을 뜻한다. 《列女傳 賢明陶答子妻傳》 남산종두희【南山種豆稀】한(漢) 나라 양운(楊惲)이 재상의 아들로 이른 나이에 현달(顯達)했다가 파직을 당한 뒤 시골에 돌아와서 불만스러운 뜻을 시로 표현하기를 “남산의 저 밭, 황무지로 놔 두었네. 1백 묘(畝)에 심은 콩, 콩깍지만 남았네.[田彼南山 蕪穢不治 種一頃豆 落而爲萁]”라고 하였는데, 남산(南山)은 임금을, 불치(不治)는 어지러운 조정을, 일경(一頃)은 백관을, 두(豆)는 재야(在野)에 버려진 자기 자신을, 기(萁)는 아첨하는 조관(朝官)들을 뜻한다고 한다. 《漢書 卷66》 남산풍발발【南山風發發】효성을 다 바치지 못하는 자식의 심경을 표현한 말이다. 어버이를 제대로 봉양하지 못하는 효자의 심정을 읊은 시경(詩經) 소아(小雅) 육아(蓼莪)에 “남산은 높다랗고, 회오리바람은 거세도다. 사람들 모두 잘 지내는데, 나만 왜 해를 입나.[南山烈烈 飄風發發 民莫不穀 我獨何害]”라고 하였다. 남상【濫觴】양자강 같은 대하(大河)도 근원은 잔을 잠글 만한 세류(細流)라는 뜻에서 유래. 즉 사물의 처음, 시작, 기원을 말함. “강이 처음 민산에서 시작될 때 그 근원은 잔에 넘칠 만큼이다[江始出於岷山 其源可以濫觴].”란 말이 있다. 《家語 三恕》 남상【南床】홍문관원의 별칭. 홍문관원이 사진(仕進)하여 앉는 좌차(座次)가 그 벼슬의 별칭이 되었으니, 곧 직제학(直提學)ㆍ전한(典翰)ㆍ응교(應敎)ㆍ부응교(副應敎)를 동벽, 교리(校理)ㆍ부교리(副校理)ㆍ수찬(修撰)ㆍ부수찬(副修撰)을 서벽, 박사(博士)ㆍ저작(著作)ㆍ정자(正字)를 남상이라 했다. 그리고 모두 경연을 겸임하였으며, 부제학에서 수찬까지는 또 지제교(知製敎)를 겸임하였다. 남선북마【南船北馬】남쪽은 배로 북쪽은 말로. 바쁘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님 남성【南省】예조(禮曹)의 별칭이다. 남궁(南宮)이라고도 한다. 남소【南巢】남방의 봉황이 깃든 곳이라 함. 남수【柟樹】매화나무. 두보(杜甫)가 남수라는 제목으로 읊은 시는 다음과 같다. “초당 앞에 강을 의지한 남수는, 2백 년이 되었다고 말로서 전해 오네[依江柟樹草堂前 故老相傳二百年].” 남수【灆水】진주(晉州) 청천(淸川)의 일명. 남수초당【楠樹草堂】두보 시에 “依江楠樹草堂前 故老相傳二百年" 이란 어구가 있음. 남숙북홀【南儵北忽】숙(儵)과 홀은 신(神)의 이름으로, 남해(南海)의 임금을 숙이라 하고 북해(北海)의 임금을 홀이라 한다. 《莊子 應帝王》 남순장【南巡仗】왕이나 왕비의 죽음을 뜻함. 순(舜) 임금이 남쪽으로 순수(巡狩)하여 창오(蒼梧)의 들에서 붕어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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