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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구경  

 

 

 

 

호장【壺漿】어진 관원이 지나가면 백성들이 항아리에 미음을 담아 가지고 바치면서 환영한다는 뜻이다.

호장백일선【壺藏白日仙】한(漢)나라 비장방(費長房)이 여남시(汝南市)의 연리(椽吏)로 있었는데, 시(市)에 한 노인이 병[壺] 하나를 매달아 놓고 약(藥)을 팔다가, 일을 마치고 나면 매양 병 속으로 들어갔다. 다른 사람은 그것을 보지 못하는데, 비장방이 누상(樓上)에서 그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서 찾아가 절하고 술과 안주를 대접하며, 같이 병 속에 들어가기를 간청하였다. 병 속에 들어가 본즉, 화려한 집과 좋은 음식들이 가득 찼었다. 노인이 말하기를, “나는 신선(神仙)인데 허물을 짓고 귀양왔다.” 하였다.

호저【縞紵】흰 명주띠와 모시옷. 춘추 시대 오(吳) 나라의 계찰(季札)이 정(鄭) 나라의 자산(子産)에게 흰 명주띠를 선사한 데 대하여 그 답례로 자산이 계찰에게 모시옷을 선사한 고사에서 온 말로, 벗 사이의 선물 또는 교의(交誼)의 뜻으로 쓰인다.《左傳 襄公二十九年》

호저회【縞紵懷】춘추 시대에 오(吳) 나라 계찰(季札)이 정(鄭) 나라 자산(子産)에게 흰 명주 띠를 선사하고, 자산은 그 답례로 계찰에게 모시옷을 보낸 고사에서 온 말이다.

호전【胡銓】송(宋)의 여릉(廬陵)사람으로 호가 담암(澹菴). 고종(高宗)때 추밀원 편수관(樞密院編修官)으로서 당시 진회(秦檜)가 금(金)과의 화의를 주장하여 금나라 사신이 강남 지방을 조유(詔諭)한다는 명분으로 임안(臨安)에 이르자, 호전이 글을 올려 진회와 손근(孫近) 및 금나라 사신 왕륜(王倫) 세 사람의 목을 베야 한다고 상소했다가 진회의 노여움을 사, 후에는 길양군(吉陽軍)에서 귀양살이를 하였다. 그 후 진회가 죽고 효종(孝宗)이 즉위하여 그를 다시 봉의랑(奉議郞)에 복위시키고 이어 소대(召對)하였음. 《宋史 卷三百七十四》

호접【蝴蝶】나비.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옛적에 장주(莊周)가 꿈에 범나비가 되었는데, 깨어 보니 바로 장주였다.” 하였음.

호접공【蝴蝶空】장자(莊子)가 꿈에 나비[蝴蝶]가 되어서 펄펄 날아 다녀 보았는데, 그때에는 자기가 그대로 나비로만 생각하였지 장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꿈을 깨어서 사람이 되고 보니, 자기가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게 되었으나 실상은 나비가 정말인데 사람이 나비 꿈속에서 잠시 화(化)한 것인지, 그렇다면 세상은 그 나비와는 관계없다는 말이다.

호접몽【胡蝶夢】중국 장자(莊子)가 꿈에 나비가 되어 즐겁게 놀았다는 고사. 장자는 꿈도 현실도, 삶도 죽음도 구별이 없는 세계를 강조했다. 우리가 보고 생각하는 것도 한낱 만물의 변화상에 불과한 것이다. 곧, 외물과 자아의 구별이 없는 세계를 강조한 말이다.

호접이망양【蝴蝶已亡羊】호접은 장주(莊周)가 꿈에 나비가 되어 피아(彼我)의 구별을 잊고 놀았다는 데서, 꿈꾼 것을 뜻하고 양(羊)을 잃었다는 것은 옛날 양자(楊子)의 이웃 사람이 양을 잃고 찾으러 나갔으나 갈림길이 많아서 찾지 못하고 말았다는 고사에서, 이미 잃어버린 것을 뜻한다.

호접지몽【胡蝶之夢】나비의 꿈. 어느 날 장주(莊周,)는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꿈에 내가(장주가) 나비가 되어 기분 내키는 대로 유쾌하게 훨훨 날아다니면서 즐기고 있었다. 그리하여 내가 장주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잠을 깨고 보니 틀림없는 나(장주)였다. 꿈이 워낙 생생하다 보니 도대체 내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있었는지, 아니면 나비가 꿈속에서 내가 되어 있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나와 나비는 겉보기엔 분명 구별이 있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사물(만물)은 서로가 본질적으로 같은 하나의 존재이다. 만물들이 세상에 존재할 때 겉모습이 나(사람)와 나비처럼 서로 다르게 보이는 것은 만물들의 단순한 변화일 뿐이지, 서로가 본질이 다른 절대적인 변화가 아니다. 즉, 이 세상 만물은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닌 동일한 본질을 가진 하나의 존재이며, 그 만물들은 각기 변화된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존재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나를 포함한 모든 사물(만물)은 본질적인 차이가 없는 하나이다

호접진【蝴蝶陣】호접진은 진법(陣法)의 하나로 왜적들이 즐겨 썼다. 임진왜란 중이던 계사년(1593)에 명 나라에서 구원병으로 나왔던 제독(提督) 이여송은 벽제(碧蹄)에서 왜적의 유인에 말려 그만 진흙 속에 빠져 탄 말이 나오지 못했다. 이여송은 몹시 위급하게 되었는데 지휘사(指揮使) 이유승(李有昇)의 구원으로 다행히 탈출하였으나 이유승은 끝내 왜적에게 잡히어 죽고 말았다. 이여송은 그의 사위 왕심(王審)을 불러 보고 크게 통곡하였다. 《再造藩邦志 卷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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