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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黃虀】거친 채소. 황제승천【黃帝升天】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에 “황제(黃帝)가 형산(荊山) 아래서 구리[銅]로 솥[鼎]을 주조하다가 솥이 다 이루어지자, 턱에 수염을 드리운 용(龍)이 내려와 황제를 맞으므로 황제가 그를 타고 하늘에 올랐다.” 하였다. 황종【黃鐘】십이율(十二律)의 하나인데, 곧 십이율의 기본음(基本音)이 된다.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중동(仲冬)의 달은 율이 황종에 해당한다.[仲冬之月 其音羽 律中黃鐘]" 하였다. 황종【黃鍾】황종은 12율(律) 가운데 양률(陽律)에 속하는 여섯 종류의 율 중 첫 번째 율이고, 대려는 여섯 음률(陰律) 중 네 번째 율로서, 음악이나 시문이 장엄하고 정대한 것을 비유할 때 곧잘 병칭해서 쓴다. 황종【黃鐘】황종은 옛 음악에서 12율(律)가운데 하나로 소리가 가장 크고 웅장한 것인데, 길이의 단위를 정할 때 황종 길이의 90분의 1을 1분(分)으로, 10분을 1촌(寸)으로, 10촌을 1척(尺)으로, 10척을 1장(丈)으로, 10장을 1인(引)으로 한다고 한다. 《漢書 律曆志》 황종【黃琮】황종은 황색의 서옥(瑞玉)으로 제사(祭祀)에 쓰는 옥임. 황종률【黃鍾律】후기법(候氣法)에 의하면, 밀실(密室) 안에 명주베[緹]를 깔고 십이 율관(十二律管)을 각 방위대로 안치한 다음, 각 율관 속에 갈대재[葭灰]를 채워 놓으면, 각 기(氣)가 이를 때마다 해당 율관의 재가 날리게 되는데, 특히 동지(冬至)의 기가 이르면 황종율관의 재가 날므로 이른 말이다. 황종손와부【黃鍾遜瓦缶】황종은 아악률(雅樂律)의 이름으로 질장군과는 크게 좋고 나쁜 차이가 있으므로, 전하여 좋고 나쁜 것에 대한 인식이 전도된 것을 비유한 말이다. 황종재동【黃鐘纔動】황종관이 움직인다는 것은 곧 황종률관(黃鐘律管)에 넣어둔 갈대재[葭灰]가 동지절(冬至節)에 이르러 날아 움직이는 것을 이른 말이고, 큰 소리가 고요하다는 것은 곧 송(宋) 나라 소옹(邵雍)의 동지시(冬至詩)에 “찬 물은 맛이 바야흐로 담담하고 지극히 큰 소리는 고요하기만 하네[玄酒味方淡 大音聲正希]” 한 데서 온 말이다. 황종해우이【黃鍾駭牛耳】황종은 현자(賢者)에 비유한 말이고, 황소 귀는 곧 사이비의 소인에 비유한 것이니, 즉 현자가 소인을 증오하는 뜻이다. 황주【皇州】제도(帝都) 즉 서울을 말함. 황주【黃紬】황주는 황색 명주 이불을 말하는데, 송 태조(宋太祖)가 일찍이 한 현령(縣令)에게 경계하기를 “황주 이불 속에 늦게까지 누워서 직무를 폐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고 했다 한다. 황주고각【黃州鼓角】황주는 중국 호북성(湖北省)의 지명이고 고각은 군중에서 사용하는 북과 나팔이다. 소동파 시에 “황주의 고각소리 그 또한 다정하다. 남쪽으로 날 보내 먼 길 아니 마다했네[黃州鼓角亦多情 送我南來不辭遠]" 라고 하였다. 황주피【黃紬被】누런 명주 이불을 말함. 송 태조(宋太祖)가 일찍이 한 현령(縣令)에게 이르기를 “근신하여 황주피(黃紬被) 속에 누워서 청사를 비우지 말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황죽【黃竹】주 목왕이 사냥을 나가서 지었다는 노래 이름. 황죽가【黃竹歌】주 목왕(周穆王)이 황대(黃坮)의 평택(苹澤)에서 사냥할 때 날씨가 몹시 춥고 우설(雨雪)이 퍼부어 얼어죽은 사람이 있음을 듣고, 애절한 뜻을 노래한 3장(章)의 황죽시(黃竹詩)를 이름이다. 황중정색【黃中正色】청(靑)ㆍ적(赤)ㆍ흑(黑)ㆍ백(白)ㆍ황(黃)의 오색을 각각 사방(四方)과 중앙에 배열하면 동쪽은 청색, 서쪽은 백색, 남쪽은 적색, 북쪽은 흑색, 중앙은 황색에 해당된다. 이와 같이 오색을 오방(五方)에 배열하는 것은 오행설(五行說)에 근거하고 있는 것인데, 황색은 중앙의 토(土)로 가장 존귀하게 보아 황제의 일용복식(日用服飾)이 모두 황색으로 되어 있다.
10/20/30/40/50/60/70/80/90/100/10/20/30/40/5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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