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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악【華嶽】중국 강소성(江蘇省)에 있는 오악(五嶽)의 하나. 화악【龢樂】화악은 오음(五音)을 가지고 악곡(樂曲)을 조율시키는 것을 말한 것으로, 국어(國語) 주어(周語)에 “오성으로 악을 고르고 율로써 오성을 균평하게 한다.[聲以龢樂 律以平聲]" 한 데서 온 말이다. 화악루【花萼樓】당 나라 양황제(讓皇帝)가 흥경궁(興慶宮) 서남쪽에 다락을 짓고 화악상휘지루(花萼相輝之樓)라 제액(題額)하였다. 제왕(諸王)들이 풍류를 아뢰면 반드시 곧 불러 다락에 오르라 하여 같은 탑(榻)에 앉아 즐기며 황금과 비단을 하사한 고사가 전한다. 화악(花萼)이란 이름은 대개 시경(詩經)에 있는 상체의 꽃[常棣之華]의 뜻을 취한 것인데 상체꽃은 형제의 우애(友愛)에 비유한 것이다. 《舊唐書 讓皇帝憲傳》 화양【華陽】은자(隱者)가 사는 곳을 가리킴. 양(梁)의 도홍경(陶弘景)이 구곡산(句曲山)에 숨어살며 자호를 화양은거(華陽隱居)라고 하고, 무제(武帝)가 예를 갖추어 맞이하려했으나 끝내 나오지 않았음. 《梁書 陶弘景傳》 화양건【華陽巾】은자(隱者)가 쓰는 두건. 신선전(神仙傳)에 이런 기록이 있다. “경조(京兆)사람인 위절(韋節)이 화산(華山)의 남쪽 기슭에 은거하면서 호를 하양자(華陽子)라고 하였으며, 그가 쓰고 다니는 두건을 화양건이라고 하였다.” 화양귀마【華陽歸馬】화양은 화산(華山)의 남쪽. 주(周) 무왕(武王)이 주(紂)를 치는 전쟁을 끝낸 뒤에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말[馬]을 화산(華山)에 돌려보내고 군수 물자를 나르던 소는 도림(桃林)의 들에 놓았다 한다. 《書經 武成》 화양동【華陽洞】화양동은 도가(道家) 삼십육동천(三十六洞天)의 제 8동으로 모군(茅君)이 다스리는 신선들이 산다는 곳이다. 화양은거【華陽隱居】산중에 은거하면서도 매양 국사를 자문받았던 양(梁) 나라 때의 도홍경(陶弘景)을 힐난하는 말이다. 도홍경은 은사(隱士)로서 자호가 화양은거(華陽隱居)이며, 일찍이 제 고제(齊高帝) 때에 제왕시독(諸王侍讀)을 지냈고 뒤에 구곡산(句曲山)에 은거하였다. 그는 특히 음양(陰陽)ㆍ오행(五行)ㆍ선술(仙術)ㆍ의술(醫術) 등에 뛰어났는데, 양 무제(梁武帝) 때에는 모든 국가의 대사(大事)를 반드시 그에게 자문하였으므로 당시 산중재상(山中宰相)이라는 칭호가 있었다. 《南史 卷七十六 隱逸下》 화어소장【禍於蕭墻】소장은 병풍으로 가까운 데에서 화란이 싹튼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계씨(季氏)에, “나는 계손(季孫)의 걱정이 전유(顓臾)에게 있지 않고 소장(蕭墻) 안에 있을까 걱정이다.” 하였다. 화엄누각풍【華嚴樓閣風】경각간에 이루어진 것을 말함. 화엽난겸여각치【花葉難兼如角齒】뾰족한 뿔이 달린 짐승은 예리한 이빨이 없듯이 꽃이 아름다운 초목은 대체로 잎이 곱지 않다는 것이다. 화영【華英】예쁜 꽃. 화예부인【花蕊夫人】오대(五代) 후촉주(後蜀主)인 맹창(孟昶)의 부인인데, 문장에 능하여 궁사(宮詞) 1백 수(首)를 지었다. 후촉이 망한 후에도 항상 후촉을 잊지 않고 맹창의 초상에 제사하였다. 화옥【華屋】화옥은 화려한 집으로 영화로운 삶을 뜻함. 화옥산구【華屋山丘】흥망성쇠와 인생의 무상함을 뜻하는 말이다. 삼국 시대 위(魏) 나라 조식(曹植)의 공후인(箜葔引)의 “살아서 화려한 집 거처하더니, 쓸쓸히 산 언덕으로 돌아갔구나.[生在華屋處 零落歸山丘]”이라는 구절에서 유래한 것이다. 화옹【禾翁】호가 화곡(禾谷)인 정사호(鄭賜湖)를 말함. 화완포【火浣布】남방에서 난다고 하는 베 이름으로, 세탁할 때 불 속에다 넣으면 베는 빨갛게 되고 때는 베 빛으로 되는데, 끄집어내어 털면 하얗게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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