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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상【陌上】악부(樂府) 상화곡(相和曲)의 이름인 맥상가(陌上歌)를 말한다. 조왕(趙王)의 가령(家令)인 왕인(王仁)의 처 나부(羅敷)가 밭에서 뽕 따는 것을 보고 조왕이 유혹하며 겁탈하려 하자, 나부가 비파를 타며 자신의 입장을 밝힌 노래이다. 《古今注 音樂》 맥상상【陌上桑】악부(樂府)의 곡명(曲名). 진씨(秦氏)의 딸이요, 왕인(王仁)의 아내인 나부(羅敷)의 미모를 탐내어 조왕(趙王)이 그녀를 빼앗으려 했으나 그녀가 맥상상(陌上桑)의 노래를 지어 자기 뜻을 표시하고 이를 거절하였다. 전하여 여인의 굳은 정조를 의미함. 《古樂府 陌上桑》 맥상화곡【陌上花曲】맥상은 언덕 위라는 뜻. 소식(蘇軾)의 맥상화시인(陌上花詩引)에 “오월왕(吳越王)의 비(妃)가 봄이 되면 반드시 임안으로 돌아가자, 왕은 비에게 편지하기를 ‘맥상에 꽃이 피니 천천히 돌아가라.’ 하였는데, 오현(吳縣) 사람들이 이 말로 노래를 지으니, 이 악곡을 맥상화(陌上花)라 하는바, 매우 완전(宛轉)하여 서글프다.” 하였다. 맥수가【麥秀歌】은 나라가 망한 뒤에 기자가 옛날 은 나라 터를 지나다가 궁실이 모두 무너지고 무성하게 보리 이삭이 팬 것을 보고는 가슴이 아팠는데 곡을 하자니 안 될 일이고 울자니 부녀자와 비슷하게 될 듯하여 이에 ‘맥수가(麥秀歌)’를 지어서 노래하였다 한다. 일명 상은조(傷殷操)라고도 부른다. 《史記 宋微子世家》 맥수가【麥穗歌】후한 때 장감(張堪)이 어양태수(漁陽太守)로 있으면서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잘살게 되자, 백성들이 노래하기를 “뽕나무는 붙은 가지가 없고 보리 이삭은 두 갈래가 지도다 장군이 정사를 하니 즐거움을 한량할 수 없네[桑無附枝 麥穗兩岐 張君爲政 樂不可支]” 한 데서 온 말인데, 보리 이삭이 두 갈래가 지는 것은 풍년의 징조라고 한다. 맥수송【麥穗頌】보리 이삭이 두 갈래가 생기는 것을 풍년의 조짐이라 하는데, 후한(後漢) 때 장감(張堪)이 어양태수(漁陽太守)가 되어 선정을 베풀자, 백성들이 그를 칭송하여 노래하기를 “뽕나무엔 붙은 가지가 없고 보리 이삭은 두 갈래가 생기었네 장군이 고을을 다스리니 즐거움을 감당치 못하겠네[桑無附枝 麥穗兩岐 張君爲政 樂不可支]” 한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張堪傳》 맥수양기【麥穗兩岐】고을 백성들이 수령의 선정(善政)을 칭송하는 것을 말한다. 후한(後漢)의 장감(張堪)이 호노(狐奴)에서 전답을 개간하여 백성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해 주자 백성들이 “보리에 이삭이 두 개씩 달렸다.[麥穗兩岐]”고 좋아하면서 노래를 불렀다는 고사가 있다. 《後漢書 張堪傳》 맥수유기【麥穗有岐】보리 이삭이 두 갈래가 지면 풍년 들 징조라 하는데, 후한 때 장감(張堪)이 어양태수(漁陽太守)가 되어 선정을 베풀자, 백성들이 노래하기를 “뽕나무는 붙은 가지가 없고 보리 이삭은 두 갈래가 지도다 장군이 정사를 하니 즐거움을 감당치 못하겠네[桑無附枝 麥穗兩岐 張君爲政 樂不可支]” 한 데서 온 말이다. 맥수지탄【麥秀之歎】기자(箕子)가 은(殷)나라 도읍을 지나며 보니 고국은 망하여 옛 궁실(宮室)은 폐허가 되고 그 터에 보리 이삭(麥秀)이 무성한 것을 보고 맥수지가(麥秀之歌)를 지어 탄식한 것에서 유래한 말. 나라를 잃은 후의 한탄을 뜻한다. 맥여궁【麥與藭】춘추(春秋)에 있는 말인데, “무사(無社)란 사람이 우물[井]에 숨어서 은어(隱語)로 보리[麥]과 궁(藭)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 일이 있다. 맥왕성【貊王城】춘천(春川)의 고호가 맥국(貊國)이었으므로, 즉 춘천의 고적을 말한 것이다. 맥일구【貉一丘】고금의 흥망 성쇠가 모두 일반이라는 뜻이다. 전한(前漢) 때 양혼(楊惲)이 “고금의 흥망 성쇠가 마치 한 언덕에 몰린 담비떼와 같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六十六 楊惲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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