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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와위공【聞蛙爲公】진(晉) 나라 혜제(惠帝)는 어리석은 임금이므로, 신하들과 동산에 놀다가 개구리의 우는 소리를 듣고는 묻기를, “저 개구리의 우는 것이 관(官 公)을 위한 것인가, 사(私)를 위한 것인가.” 하였다. 문왕연이공린경【文王演易孔麟經】난세(亂世)에 처해서도 의연히 대작(大作)을 완성했던 것을 말한다. 주 문왕(周文王)이 유리(羑里)에 갇혀 있으면서도 주역(周易)을 연역(演繹)하였다는 말이 사기(史記) 태사공 자서(太史公自序)에 나온다. 공자가 춘추(春秋)를 지으면서 “애공(哀公) 14년 봄, 서쪽 교외 사냥에서 기린이 잡혔다.[西狩獲麟]”는 구절로 끝냈으므로, 춘추(春秋)를 인경(麟經)이라고도 한다. 문왕일반【文王一飯】소학(小學) 계고(稽古) 편에, “文王有疾 武王不說冠帶而養 文王一飯 亦一飯 文王再飯 亦再飯”이라 하였음. 문왕조【文王操】금조 이름으로, 은(殷) 나라 주(紂)가 무도하여 제후들이 모두 문왕(文王)에게로 돌아오므로, 문왕이 이 노래를 지었다 한다 문왕조【文王操】악부(樂府)의 금곡(琴曲) 이름으로, 주 나라 문왕(文王)이 주(紂)를 물리친 뒤 봉황이 글을 물고 오는 상서가 있자 이 노래를 지었다고 한다. 문왕지유【文王之囿】유(囿)는 새짐승을 기르는 곳. 담[墻] 없는 동산. 주(周)문왕의 동산은 70리였다. 문왕청묘십【文王淸廟什】시경의 대아와 송(頌)의 편명. 문왕피우릉【文王避雨陵】좌전(左傳) 희공(僖公) 32년에 “효함(殽函)에 두 언덕이 있는데 남쪽 언덕은 하걸(夏桀)의 조상인 하후 고(夏侯皐)의 무덤이 있고, 북쪽 언덕은 주문왕(周文王)이 풍우(風雨)를 피하던 곳이다.” 하였다. 문왕후천【文王後天】은(殷)의 주(紂)가 유리(羑里)에 있는 감옥에다가 주 문왕(周文王)을 가두었다. 이때 문왕은 감옥에서 복희(伏羲)의 8괘(卦)를 근본으로 하여 64괘(卦)를 만들어내니 이것을 ‘문왕후천(文王後天)’이라 하며, 이 때문에 주 나라의 역(易)이란 뜻으로 ‘주역(周易)’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문외가설작라【門外可設雀羅】문전성시(門前成市)와는 반대로, 문 밖에 새 그물을 쳐놓을 만큼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짐을 말한다. ☞ 문설작라(門設雀羅) 문외작라【門外雀羅】벼슬에서 물러나와 한가하게 삶을 표현한 말. 사기(史記) 급정전(汲鄭傳)에 “책공(翟公)이 정위(廷尉)로 있을 때엔 손님들이 문에 가득하더니 퇴직한 후에는 문 밖에 새 잡는 그물을 치게 되었다.” 하였다. 문외한【門外漢】문 밖의 사람. 그 일에 대하여 전문적인 지식이 없거나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 비전문가 문외한장군【門外韓將軍】수(隋) 나라 장군 한금호(韓擒虎). 당시 진 후주(陳後主)가 향락만 하다가 한 장군(韓將軍)이 바로 성문에 들어오는 것도 몰랐다. 문요【文饒】이덕유(李德裕)의 자임. 문웅【文雄】문호(文豪)와 같은 말로, 문장으로 이름난 대작가를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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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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