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모【母】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를 일컬을 때 先大夫人(선대부인), 先慈堂(선자당) 모【母】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를 일컬을 때 先慈親(선자친), 先妣(선비) 모【母】살아 계신 남의 어머니를 일컬을 때. 慈堂(자당), 大夫人(대부인), 萱堂(훤당), 令堂(영당) 모【母】살아 계신 자신의 어머니를 일컬을 때. 慈親(자친), 母親(모친), 家慈(가자), 家母(가모), 慈闈(자위) 모격【毛檄】모의(毛義)가 받든 부의 임명장[府檄]이란 뜻으로, 어버이 봉양을 위한 벼슬살이를 말한다. 후한(後漢)의 모의가 모친 생존 시에는 부격(府檄)을 받으면 기뻐했으나, 모친 사후에는 일절 벼슬길을 사양했던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39 劉平等傳 序》 모골송연【毛骨悚然】아주 끔찍한 일을 당하거나, 볼 때에 두려워 몸이나 털끝이 으쓱하여 짐. 모공우【毛空雨】가랑비를 말함. 소식(蘇軾)의 동파시(東坡詩)에 “모공이 봄 못에 자욱하다[毛空暗春澤]”하였는데, 그 자주(自注)에 “촉인(蜀人)들이 세우(細雨)를 우모(雨毛)라 한다.” 하였다. 모공해오【毛公解誤】모공은 동한(東漢)의 여강(廬江) 사람 모의(毛義)인데 집이 가난하였으나 효자로 일컬어졌다. 남양(南陽)의 장봉(張奉)이 그의 이름을 사모하여 찾아갔는데 그 때 마침 부(府)에서 그를 안양 영(安陽令)으로 임명하는 격문(檄文)이 당도하였다. 모의가 그 격문을 받아 보고 매우 기뻐하자 장봉이 마음 속으로 비루하게 여겼다. 뒤에 모의는 모친이 죽자 벼슬을 그만두었고 현량(賢良)으로 추천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장봉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어진이는 정말 헤아리기 어렵구나! 지난번 그가 기뻐한 것은 어버이의 봉양을 위해 뜻을 굽힌 것이니, 이른바 집이 가난하고 어버이가 늙으면 자리를 가리지 않고 벼슬한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後漢書 卷 39》 모구【旄丘】모구는 시경(詩經) 패풍(邶風)의 편명인데, 즉 앞은 높고 뒤가 낮은 언덕이라는 뜻이다. 춘추 시대 여후(黎侯)가 오랑캐로부터 자기 나라에서 쫓겨나 위(衛) 나라에 붙어 있을 때 여(黎) 나라의 신하들이 “언덕의 칡덩굴은 어찌 그리도 마디가 길게 뻗었느뇨. 위(衛)의 제신(諸臣)은 어찌 그리도 우리를 구하지 않고 늑장만 부리느뇨.[旄丘之葛兮 何誕之節兮 叔兮伯兮 何多日也]" 라는 시를 지어, 위 나라가 자기들을 구해 주지 않는 것을 원망한 데서 온 말이다. 모구갈【旄丘葛】춘추 시대 여(黎) 나라 신자(臣子)들이 나라를 잃고 위(衛) 나라에 부쳐 있으면서, 위 나라가 구원병을 빨리 보내주지 않은 것을 원망하여 “모구의 칡덩굴이여 어찌 그리 마디가 길게 자랐는고. 숙이며 백은 어찌 그리 많은 날을 보내는고[旄丘之葛兮 何誕之節兮 叔兮伯兮 何多日也].”라고 노래한 데서 온 말이다. 《詩經邶風 旄丘兮》 모구유갈하다일【旄丘有葛何多日】마중하러 나오는 사람이 오래도록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경(詩經) 패풍(邶風) 모구(旄丘)에, “저 언덕의 칡이여, 어쩜 이리 마디가 긴가. 숙이여 백이여, 어쩜 이리 여러 날이 걸리는가.[旄丘之葛兮 何誕之節兮 叔兮伯兮 何多日也]” 한 데서 따온 말이다. 모국【牡菊】씨가 없는 국화. 태워서 재로 만들어 뿌리면 개구리를 죽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本草 菊》 모국막경투【毛鞠莫輕投】공[毛鞠]을 던져 참선(參禪)하는 스님을 깨우지 말라는 뜻이다. 고려 때에 특히 격구(擊毬)가 성행하였다. 모군봉격희【毛君奉檄喜】모군(毛君)은 후한(後漢) 시대의 모의(毛義). 어머니는 늙고 집은 가난했던 모의가 어느 날 뜻밖에 수령(守令)으로 부르는 부(府)의 격소(檄召)를 받고는 희색이 만면하여 그를 본 이들이 모두 그를 천히 여겼었는데, 그후 어머니가 죽자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었으나 끝내 응하지 않아 사람들이 그때서야 그의 진의를 알고 감탄했다는 것이다. 《後漢書 卷69》 모군정려【毛君鼎呂】사신으로 가서 국가의 체모를 중하게 한 것을 말한다. 모군은 조(趙) 나라의 모수(毛遂)를 가리키고, 정려는 구정(九鼎)과 대려(大呂)로, 우(禹) 임금이 만들었다고 하는 솥과 종이다. 전국 시대 때 조 나라의 평원군(平原君)이 모수를 데리고 초왕(楚王)과 교섭하러 갔는데, 초왕에게 합종(合縱)의 이해(利害)를 말하였으나 한나절이 다 되도록 결말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모수가 칼을 빼들고 단상으로 뛰어 올라가 초왕을 위협해서 드디어 합종에 대한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자 평원군이 말하기를, “조 나라를 구정이나 대려보다도 중하게 만들었다.” 하였다. 《史記 卷76 平原君列傳》
05/10/15/20/25/30/35/40/45/50/55/60/65/70/75/80/85/90
|
|
|
|
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
|
|
|
||
Copyright (c) 2000 by Ansg All rights reserved <돌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