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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無始】시작도 끝도 없이 순환 반복하는 현상계를 주재하는 절대적인 도(道)의 경지를 말한다. 근사록(近思錄) 1권 도체류(道體類)에, “동정은 끝이 없고 음양은 시작이 없나니, 도를 아는 자가 아니라면 누가 이런 이치를 제대로 알겠는가.[動靜無端 陰陽無始 非知道者 孰能識之]”라고 한 정이천(程伊川)의 말이 실려 있다. 무시공【無是公】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말. 한(漢) 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자허(子虛)ㆍ오유 선생(烏有先生)ㆍ무시공 등 세 가공 인물을 등장시켜 자허부(子虛賦)를 지었는데, 그 중에 무시공은 자신을 지칭한 것이다. 무심가입백구군【無心可入白鷗群】열자(列子)에 나온 말인데, 바닷가에 사는 어느 사람이 매일 갈매기와 친하게 놀아서 갈매기가 사람을 피하지 않았더니, 하루는 그의 아버지가, “갈매기를 한 번 갖고 오너라. 내가 구경해야겠다.” 하였다. 이튿날 바닷가에 나간즉 갈매기들이 공중에만 날고 날아오지 아니하였다. 이것은 갈매기를 잡겠다는 기심(機心)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일에는 기심을 잊었기[忘機] 때문에 갈매기와 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쌍장【無雙將】한(漢) 나라의 명장인 우북평 태수 이광이 천하 무쌍의 장수라는 찬탄을 받은 고사가 있다. 《漢書 李廣傳》 무아도취【無我陶醉】즐기거나 좋아하는 것에 정신이 쏠려 취하다시피 되어 자신을 잊어버리고 있는 상태. 무아지경(無我之境) 무아묘【巫娥廟】무산 신녀(巫山神女)의 사당. 초 양왕(楚襄王)이 일찍이 고당(高唐)에서 놀다가 낮잠을 자는데, 꿈에 한 여자가 와서 “저는 무산의 여자로서 고당의 나그네가 되었는데 임금님이 여기 계시다는 말을 듣고 왔으니, 침석(枕席)을 같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므로 임금은 하룻밤을 같이 잤는데, 아침에 여자가 떠나면서 “저는 매일 아침이면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됩니다.” 하기에 지켜보니 과연 그 말과 같으므로 임금이 거기에 조운묘(朝雲廟)를 건립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宋玉 高唐賦》 무아지경【無我之境】마음이 한 곳에 온통 쏠려 자기를 잊고 있는 경지. 무안옥와진【武安屋瓦振】무안은 진(秦) 나라 장수 백기(百起)가 조(趙) 나라 장수 이목(李牧)을 격파한 성인데, 그때 큰 바람이 불어 가옥(家屋)이 대파(大破)됐다. 사기(史記) 무안왕묘【武安王廟】무안왕은 관우(關羽)로, 관왕묘(關王廟)를 가리킨다. 무안후【武安后】한 효경후(漢孝景后) 전씨(田氏)의 동생인 전분(田蚡)의 봉호. 왕실의 외척으로서 두영(竇嬰)의 시중을 들다가 태위(太尉)로 제수된 뒤 두태후가 죽고나자 승상에 이르러 천하에 권위를 떨쳤다. 두영과 관부(灌夫)를 무함하여 죽게 하였다. 《史記 卷一百七》 무앙【無央】무궁(無窮)과 같은 뜻이다. 곽거병(霍去病)의 금가(琴歌)에 “국가가 편안하니 즐거움이 끝없도다.[國家安寧 樂無央兮]" 하였다. 무애【無涯】무애는 넓어서 가이 없는 것으로 사람의 지혜를 말한다. 《莊子 養生主》 무양【無恙】근심이 없다는 말. 후세에 병(病)이 없다는 뜻으로 전용. 무양【舞陽】번쾌(樊噲)를 이름. 무양후(舞陽侯). 진(秦)이 망한 후 유방(劉邦)이 천하를 통일할 때 큰 공을 많이 세웠음. 《史記 卷九十五》 무양【巫陽】상고 시대 신무(神巫)의 이름. 그는 점을 쳐서 사람의 생사 존망과 화복 수요를 사전에 귀신같이 알아맞혔다고 한다. 무양【巫陽】상고 시대 신무(神巫)의 이름. 여무(女巫)로 상제의 명을 받고 혼백을 주관하는 일종의 저승사자이다. 초사(楚辭) 초혼(招魂)에 “상제가 무양에게 이르기를 ‘하토(下土)에 있는 사람을 불러다 나를 보좌하게 할테니 그대는 이산(離散)된 그의 혼백(魂魄)을 찾아 나에게 데려오도록 하라.’ 하였다.” 하였다. 참고로 소식(蘇軾)의 시 ‘징매역통조각(澄邁驛通潮閣)’에 “餘生欲老海南村 帝遣巫陽招我魂”이라는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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