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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아【蘭芽】어린 아들을 비유한 말. 백거이(白居易)의 생자시(生子詩)에 “추월 아래 늦게야 단계의 열매 생기고 봄바람에 새로이 자란의 싹이 자라누나[秋月晩生丹桂實 春風新長紫蘭芽]”하였다. 《白樂天詩後集 卷十》 난액【鸞掖】문하성(門下省)의 이칭. 난야【蘭若】범어(梵語)의 음역(音譯)인 아란야(阿蘭若)의 준말로, 적정(寂靜) 공한(空閑)한 비구(比丘)의 수행처, 곧 사찰을 가리킨다. 난여【鑾輿】임금의 수레를 가리킨다. 난여취【蘭餘臭】공자가어(孔子家語) 본문(文本)에 “선(善)한 사람과 같이 지내면 마치 지란(芝蘭)이 놓인 방안에 들어가 오래 있을수록 그 향내가 나지 않아도 온몸에 젖는 것과 같이 저절로 선에 훈화(熏化)된다.” 하였다. 난옥【蘭玉】지란옥수(芝蘭玉樹)의 준말로 남의 집안의 우수한 자제(子弟)를 예찬하는 말임.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에 “비유하자면 지란옥수가 뜰안에 자라게 하고 싶다.[譬如芝蘭玉樹 欲使其生於階庭耳]" 하였음. 난왈【亂曰】작품의 마지막에 전편의 대의를 요약해 놓은 것. 초사체에서 끝에 덧붙여 자신의 감정을 서술하는 것. 난원【欄垣】담장, 울타리 난원소객【蘭畹騷客】난원은 난초밭이란 뜻인데, 원(畹)은 밭 20묘(畝)를 뜻하며 일설에는 30묘라고도 한다. 시인이란 곧 초 회왕(楚懷王) 때의 충신 굴원(屈原)을 가리키는데, 초사(楚辭) 이소(離騷)에 “이미 구원엔 난초를 심었고, 또 1백묘엔 혜초를 심네[旣滋蘭之九畹兮 又樹蕙之百畝]" 하였다. 난위수【難爲水】큰 바다를 보았으므로 이제부터는 웬만한 물은 하찮게 여겨진다는 뜻.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바다를 구경한 자에게는 물이 되기 어렵고 성인의 문에서 공부한 자에게는 말이 되기 어렵다.[觀於海者難爲水 遊於聖人之門者難爲言]" 하였다. 난위환문작도위【爛胃還聞作都尉】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높은 관직을 멋대로 차지하는 당시의 세태를 풍자한 말이다. 후한(後漢) 때 장안(長安)에서 “양의 위장 굽는 사람 기도위 되고, 양 머리 굽는 사람 관내후 됐네.[爛羊胃 騎都尉 爛羊頭 關內侯]”라는 말이 떠돌았다고 한다. 《後漢書 劉玄傳》 난율취동군【暖律吹東君】연(燕) 나라에 한곡(寒谷)이 있으니 추워서 곡식이 되지 않았는데, 추연(鄒衍)이 난율(暖律)을 불어넣으니 따뜻한 기운이 돌아왔다. 난의포식【暖衣飽食】따뜻한 옷에 음식을 배불리 먹음, 생활에 부자유스러움이 없음. 난장【亂杖】발가락을 뽑히는 형벌. 조선시대 도둑 등을 다스리는 악형(惡刑)중에 난장과 주뢰(周牢) 두가지가 있었는데, 난장은 영조 46년에 이미 없어지고, 주뢰는 후기까지도 간혹 사용되었다. 난전【蘭殿】난초의 향기가 풍기는 궁전으로 후비(后妃)의 처소를 말한다. 난정【蘭亭】난정은 중국 회계(會稽) 산음(山陰)에 있던 정자의 이름인데, 동진(東晉) 때 회계 내사(會稽內史)로 있던 왕희지(王羲之)를 비롯하여 손작(孫綽)ㆍ사안(謝安)등 당시의 명사 42인이 그곳에 모여 계제사(禊祭祀)를 행한 뒤에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며 놀았다. 《蘭亭考 卷一》 난정묵적【蘭亭墨跡】왕희지(王羲之)의 글씨 중에는 난정첩(蘭亭帖)이 가장 유명하다. 난정서【蘭亭序】진 목제(晉穆帝) 영화(永和) 9년 3월 3일에, 당시의 명사(名士) 41명이 난정에 모여 곡수(曲水)에 잔을 띄워 계연(稧宴)을 베풀며 시를 지었다. 왕희지(王羲之)는 그 서문을 썼는데, 그것이 바로 난정서임. 난정수계【蘭亭修禊】왕희지(王羲之) 의 蘭亭集序에 “모춘(暮春)의 초엽에 회계산(會稽山)의 난정에 모여 계사(禊事)를 치렀다.” 하였다. 난정승집【蘭亭勝集】난정의 성대한 모임. 진목제(晉穆帝) 영화(永和) 9년 3월 3일에, 왕희지(王羲之)가 회계(會稽)의 산음(山陰)에 있는 난정에 모여, 재액을 떨어버리고 복을 구하는 행사를 하였다고 한다. 《晉書 王羲之傳》 난정유수적벽월【蘭亭流水赤壁月】뜻이 맞는 친구들과 어울려 멋들어진 풍류를 함께 즐겼다는 말이다. 진(晉) 나라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서(蘭亭序)’와 송(宋) 나라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절창(絶唱)으로 회자되고 있다. 난정첩【蘭亭帖】동진(東晉)의 왕희지(王羲之)가 3월 3일에 벗들과 더불어 난정(蘭亭)에서 모여놀고 각각 시(詩)를 짓고 자신이 서문(序文)을 지어 그의 득의한 글씨를 서수필(鼠鬚筆)로 고치 종이[繭紙]에 쓴 것이 유명한 난정첩이다. 난정취【蘭亭醉】진(晉) 나라 목제(穆帝) 영화(永和) 9년 3월 3일에 당시의 명사들이 난정에 모여서 곡수(曲水)에 술잔을 띄워 계연(禊宴)을 베풀고 시를 읊으며 노닐었던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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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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