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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마미흘화원도【納馬未訖華元逃】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宣公) 2년 조(條)에 송(宋) 나라 화원(華元)이 포로가 되었는데, 말 1백 사(駟)를 속(贖)바치기로 하였다. 그런데 화원이 말을 반쯤 바쳤을 때 도망쳐 오자, 사람들이 “털북숭이가 갑옷을 버리고 왔다.[于思于思 棄甲以來]”고 노래를 불러서 조롱하였다. 납매【蠟梅】생강나무를 말한다. 2월에 개화하는데, 색깔이 밀랍(蜜蠟)과 같고 향기가 매화와 비슷하기 때문에 황매(黃梅)라고도 한다. 납부【蠟跗】부(跗)라는 것은 매화꽃의 화판이 붙었던 꽃꼭지이다. 매화의 꼭지는 황갈색이므로 그것은 밀[蠟]로 만든 것이라고 미화하여 말한 것이다. 납부출성【納符出城】밀부(密符)를 반납하고 도성(都城) 밖으로 나감. 의정(議政)ㆍ국구(國舅) 등이 임금의 불허(不許)를 무릅쓰고 강한 사직(辭職)의 뜻을 보이는 행동. 의정ㆍ국구가 장신 밀부(將臣密符)를 지니는 것은 혹 호위대장(扈衛大將) 등을 겸직(兼職)하기 때문이다. 납서점벽【納書粘壁】당태종. 위징(魏徵)이 간의대부(諫議大夫)로서 감히 용안을 범하면서까지 직간(直諫)하되 태종이 잘 용납했으며, 그가 소진(疎陳)한 2백여 사(事)를 벽 위에 붙이고 보았다. 납설【臘雪】동지(冬至)에서 입춘(立春)까지의 눈을 가리키는 말이다. 납언【納言】순(舜) 임금 때의 관명(官名)으로, 임금의 말을 백성에게 하달하고, 백성의 말을 임금에게 아뢰어 상하의 정을 소통시키던 직책이었다. 납육【臘肉】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옛날 여행할 때의 식량으로 많이 가지고 다녔다. 납의【衲衣】승려의 별칭. 또는 승복(僧服)을 가리킨다. 승려는 세상 사람들이 내버린 낡은 천조각을 누덕누덕 기워서 옷을 만들어 입는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납자(衲子) 혹은 납승(衲僧)이라고도 한다. 납전백【臘前白】동지(冬至) 뒤에 셋째 술일(戌日)을 납(臘)이라 하는데, 이 납전에 오는 눈은 그 해의 채소나 보리에 아주 좋다고 한다. 《本草 臘雪》 납전요백【臘前要白】이 구절은, 납일 전에 눈[雪]이 세 번 내리면 이듬해에 풍년이 들 징조로 삼는 데서 이른 말. 납제금곡원제노【蠟啼金谷怨齊奴】진(晉) 나라 부호(富豪)였던 석숭(石崇)이 땔나무 대신 밀[蠟]로 밥을 지었다 한다. 금곡은 그의 별장이 있던 곳이며, 제노(齊奴)는 석숭의 별명이다. 《晉書 卷三十三 石崇傳》 납주【臘酒】섣달에 빚어 만든 술 납창【蠟窓】방수(防水)하기 위하여 밀을 먹인 종이로 바른 창. 납청정【納淸亭】몹시 납작하게 부서진 물건을 가리키는 말. 납청정은 본시 정자 이름으로 평북 가산(嘉山) 지경에 있었는데, 중국 사신 당고(唐皐)가 명명하고 사도(史道)가 기문을 지었으며, 그들의 시(詩)도 있었다. 그후 정자는 허물러지고 다만 사신이 왕래할 적에 말을 갈아타던 체마관(遞馬館)이 있었는데, 거주민들이 시장을 개설하였다가, 병자호란 때에 청병(淸兵)이 쳐들어와서 여지없이 유린하고 약탈하여 갔다는 데에서 생긴 말이다. 납파【納疤】개개인의 신체상의 특징, 특히 흉터 같은 것을 군부(軍簿)에 기록하는 일. 파는 흉터를 말한다. 조선시대 15∼60세까지의 남자는 병역 의무가 있었는데 남아 15세가 되어 군적을 만들 때 호적(戶籍) 외에 개개인의 구별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몸의 흉터를 명기(明記)하여 당사자임을 확실히 하였다. 목민심서(牧民心書)에 “파란 얼굴의 흉터를 말함인데 이를 군적에 기입한다.” 하였다. 납판【蠟瓣】그 꽃술이 백랍벌레[蠟蟲]처럼 생겼기 때문에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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