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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남【采藍】시경(詩經) 소아(小雅) 채록(采綠)에 의하면, 행역(行役) 나간 남편을 그리워하여 부른 노래로 “아침 내내 쪽풀을 캤지만, 행주치마도 다 안 차네. 닷새만 되면 온다더니, 엿새가 되어도 오지를 않네.[終朝采藍 不盈一襜 五日爲期 六日不詹]" 한 데서 온 말이다. 채녀가【蔡女笳】채녀는 후한(後漢) 채옹(蔡邕)의 딸인 채염(蔡琰)을 가리킨다. 흉노(匈奴)의 포로가 되어 호중(胡中)에서 12년 동안 살다가 조조(曹操)의 구원을 받고 중국에 돌아온 뒤 비분강개의 심정을 읊으며 호가십팔박(胡笳十八拍)을 지었다 한다. 《樂府詩集 琴曲歌辭 胡笳十八拍》 채단【彩團】재인(才人)의 집단을 가리키는 말. 채도주【蔡道州】채도주는 송(宋) 나라 때 위학(僞學)으로 몰리어 도주에 유배된 채원정(蔡元定)을 이르는데, 그가 도주에 가서 편지를 보내 제자(諸子)들에게 훈계하기를 “혼자 다닐 때는 그림자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하고, 홀로 잠잘 적에는 이불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내가 죄를 얻었다 하여 사도(斯道)에 게을리하지 말라.”고 하였다. 《宋史 卷四百三十四》 채두【釵頭】비녀처럼 생긴 불똥지우개. 채란【采蘭】채란은 진(晉) 나라 속석(束晰)의 ‘보망시(補亡詩) 남해(南陔)’에 나오는 ‘언채기란(言采其蘭)’에서 나온 말로, 보배로운 향초를 캐어 어버이에게 드린다는 뜻에서 어버이 봉양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채란시【採蘭詩】부모를 효도로 봉양하는 일을 읊은 시이다. 속석(束晳)의 남해(南陔)시에, “저 남쪽 언덕에 올라 그 난초를 뜯네.[循彼南陔 言采其蘭]”하였다. 채련【彩輦】영여(靈輿)를 말한다. 채련【採蓮】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것을 뜻함. 생원과(生員科)ㆍ진사과(進士科)에 합격한 사람의 이름을 적은 명부(名簿)를 연방(蓮榜)이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채련곡【採蓮曲】악부 가사명으로 내용은 대부분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는 태도를 기술하였다. 채련사【採蓮詞】연밥을 따는 모습을 읊은 노래로, 악부(樂府)의 청상곡(淸商曲) 가운데 하나인 채련곡(採蓮曲)을 말한다. 채륜【蔡倫】채륜은 후한(後漢) 화제(和帝) 때 처음으로 종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後漢書 卷108 箋紙譜》 채모팽기【蔡謨蟛蜞】진(晉) 나라 때 채모가 방게를 보고 대단히 좋아하여 이를 삶아 먹고 나서는 속이 좋지 않아 다 토해 내고 힘이 쭉 빠지므로, 이것이 먹는 게가 아닌 줄을 알았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晉書 蔡謨傳》 채묘등몽【菜苗登夢】송 진종(宋眞宗)이 일찍이 난간에 나와서 선비를 선발했는데, 꿈에 전각 아래에 채소 한 포기가 매우 무성한 것을 보았다. 그런데 채제(蔡齊)가 일등으로 뽑혔다. 채무【彩舞】채색옷을 입고 추는 춤. 곧 늙은 부모를 위로하는 일을 미화하여 이르는 말. 고대(古代)에 노래자(老萊子)라는 효자가 나이 70에 색동옷을 입고 어린애 모양으로 노친 앞에서 재롱을 부려, 노친으로 하여금 나이 든 것을 잊게 하였다 한다. 《蒙求 下 老萊斑衣》☞ 반의지희(斑衣之戲). 채묵【蔡墨】채(蔡)는 거북을 말한 것으로, 채묵은 바로 거북점을 칠 적에 거북껍데기에 먹으로 획을 그은 다음 이를 태워서 길흉(吉凶)을 점치는 것을 말한다. 채문도사【蔡門倒屣】손님을 반갑게 영접하는 것을 말한다. 위지(魏志) 왕찬전(王粲傳)에 “채옹(蔡邕)이 문 밖에 왕찬(王粲)이 와 있다는 말을 듣고는 신을 거꾸로 끌고 나가 영접하였다.” 한 데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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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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