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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부【萑苻】춘추 시대 정(鄭) 나라의 강도(强盜)가 출몰했던 늪지대 이름. 추비전패【追飛電牌】패면(牌面)에 추비전(追飛電) 3자를 새긴 납으로 만든 패. 연산군 때에 궁중에서 쓰는 물건은 정원(政院)을 경유하지 않고 액정서(掖庭署)에서 직접 사람을 보내어 각사(各司)에 가서 입으로 ‘무슨 물건을 들이라.’ 했는데 그 가는 사람이 차는 패로서, 급하기가 비전(飛電)과 같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추비춘경비【秋悲春更悲】소동파(蘇東坡)의 법혜사횡취각(法惠寺橫翠閣)에 “봄이 오매 고향에 돌아갈 기약 없으니, 사람들은 말하길 가을이 슬프나 봄은 더욱 슬프다네.” 하였다. 추사【秋社】입추(立秋)가 지난 뒤 다섯 번째의 무일(戊日)에 토지신(土地神)에게 올리는 제사를 말한다. 추사【樞司】정치의 중추(中樞)가 되는 기관이라는 뜻으로, 비변사(備邊司)를 가리킨다. 추사【秋史】조선 말기에 금석학(金石學)과 서예(書藝) 등에 크게 뛰어났던 김정희(金正喜)의 호이다. 추사재리동【秋事在籬東】은거하면서 국화나 완상함을 비유한 말. 도잠(陶潛)의 음주(飮酒) 시에 “동쪽 울타리 밑에 국화를 따면서 유연히 남산을 보노라.[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 한 데서 온 말이다. 추산자【秋山子】박홍중(朴弘中)의 호이다. 추생【鄒生】추생은 전국 시대 제(齊) 나라의 변설가(辯舌家) 추연(鄒衍)을 말한다. 사기(史記)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에 “유자들이 말하는 중국이라고 하는 것은 천하 가운데 팔십일 분의 일에 해당하는 것일 뿐이다.[儒者所謂中國者 於天下乃八十一分居其一分耳]”라고 말한 추연의 주장이 실려 있다. 추생담해【鄒生談海】추생은 전국 시대 제(齊) 나라의 추연(鄒衍)을 이름. 광대한 담론이란 바로 추연이 천상(天象)을 말하는 데 있어 그 변론이 굉원박대(宏遠博大)하였음을 이른 말이다. 추생영해사【鄒生嶺海死】전국 시대 제(齊) 나라의 추연(鄒衍)을 가리킨다. 연(燕) 나라 혜왕(惠王)이 참소하는 말을 믿고서 추연을 옥에 가두었는데, 여름인데도 서리가 내리고 오곡(五穀)이 익지 않았다고 한다. 추생율【鄒生律】추생은 전국(戰國) 시대 제(齊) 나라 추연(鄒衍)을 가리킨다. 추연은 본디 율(律)에 능하여, 기후가 차가워서 오곡(五穀)이 성장하지 못하는 북방(北方)의 어느 땅에 그가 율을 불어 그곳에 따스한 봄이 오게 해서 벼ㆍ기장 등의 곡식이 잘 자랐다 한다. 《列子 湯問》 추생취율【鄒生吹律】추생은 전국 시대 제(齊) 나라 추연(鄒衍)을 이르는데, 그가 연 혜왕(燕惠王)을 섬길 적에 혜왕이 다른 신하의 참소하는 말을 믿고 그를 하옥시키자 때아닌 5월에 서리가 내렸고, 또 북방은 기후가 차서 오곡(五穀)이 자라지 못했는데, 그가 율(律)을 불어 기후를 다습게 하자 벼와 기장이 자랐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列子 湯問》 추서【墜緖】쇠퇴해진 사업(事業)이란 뜻으로, 선왕 선성(先王先聖)이 전해 온 사도(斯道)를 의미한다. 추서【鄒書】임금에게 원통함을 호소하며 올리는 글을 말한다. 한(漢) 나라 추양(鄒陽)이 양 효왕(梁孝王)의 문객으로 있을 때 참소를 받고 하옥되었다가 상서를 하여 석방된 고사가 있다. 《史記 魯仲連鄒陽列傳》 추서【追胥】추서는 도적을 추격하여 체포하는 역인(役人)을 가리킨다. 추서여왕찬【推書與王粲】중국 삼국 시대 위(魏) 나라 채옹(蔡邕)이 나이 어린 왕찬을 기특하게 여긴 나머지 신발을 거꾸로 신고 나아가 맞이하였는가 하면 자기 집안의 서적을 모조리 왕찬에게 주겠다고 한 고사가 전해 온다. 《三國志 卷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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