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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록【逐鹿】사슴을 쫓음. 제위帝位나 정권을 다툼을 비유하거나 또는 널리 ‘경쟁하다’의 의미 축록자불견산【逐鹿者不見山】사슴을 쫓는 사람은 산을 보지 못한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에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은 다른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 축록자불고토【逐鹿者不顧兎】사슴을 쫓는 자는 토끼를 돌아보지 않는다란 뜻으로, 큰 일에 뜻이 있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 구애되지 않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축리접위구【逐利接爲構】소인은 마음이 한가하지 못하고 이욕에 급급하여 자나깨나 항상 외부와 접촉하면서 갈등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莊子 齊物論》 축빈부【逐貧賦】한(漢)의 양웅(揚雄)이 지은 문장 이름이다. 연감유함(淵鑑類函) 빈 조(貧條)에도 보임. 축삼년애【畜三年艾】미리 걱정해서 대비함을 말함. 맹자(孟子) 이루상(離婁上)에 “지금 왕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7년된 병에 3년 묵은 쑥을 구함과 같으니 비축하지 않으면 종신토록 얻지 못하리라.” 하였음. 축성사【築城司】비변사(備邊司)의 전신임. 조선조 중종 12년(1517) 4월에 평안도, 함경도 등지의 변경방비를 강화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는데, 그해 7월에 비변사로 명칭을 고치고 삼의정(三議政)을 도제조(都提調)에 임명하는 조치가 취해짐. 축신【逐臣】임금에게서 추방당한 신하를 이름. 이백의 시에 “黃花哭逐臣" 이 있음. 축신소객고사군【逐臣騷客苦思君】송나라 범중엄(范仲淹)이 지은 악양루기(岳陽樓記)에, “동정호(洞庭湖)에 비가 부슬부슬 오는 컴컴한 저문 날에 범이 휘파람 불고 원숭이가 울 제, 귀양온 불우(不遇)한 신하가 임금을 생각하는 슬픈 회포가 생긴다.” 하였다. 축실【築室】자공(子貢)을 가리킨다. 공자가 죽은 뒤 3년이 지나자 문인들이 모두 떠나갔는데, 자공은 공자의 묘 마당에 집을 짓고서 3년 동안 살다가 떠나갔다. 《孟子 滕文公上》 축암【築巖】축암은 은(殷) 나라 부열(傅說)이 부암(傅巖)의 공사판에서 막노동했던 것을 말한다. 《書經 說命下》 축요【祝堯】당요(唐堯) 때에 화(華)의 봉인(封人)이 수(壽)ㆍ부(富)ㆍ다남자(多男子) 세 가지 일을 요(堯) 임금에게 빈 고사로, 전하여 임금을 배알하고 축수하는 일을 비유한 것이다. 축요심【祝堯心】요 임금이 화(華) 땅을 시찰할 적에 그 봉인(封人)이 요 임금에게 수(壽)ㆍ부(富)ㆍ다남자(多男子)로써 축수했던 데서 온 말이다. 축원령【逐原鴒】형제간에 위급함을 구원하기 위하여 달려가는 것을 말한다. 물가에 있어야 할 할미새가 언덕에서 쏘다니며 자기의 짝을 찾듯, 그렇게 형제간에 우애가 깊어 어려움을 구하기 위하여 달려간다[鶺鴒在原 兄弟急難]는 시경(詩經) 소아(小雅) 상체(常棣)의 구절에서 비롯된 것이다. 축융【祝融】화신(火神)을 말한다. 불은 방위로는 남쪽이고 사시(四時)로는 여름이며 색깔은 적색이다. 예기(禮記) 월령에 “맹하(孟夏)의 신(神)은 축융이다.” 하였다. 축융봉【祝融峯】경북 봉화(奉化)에 있는 청량산(淸涼山)의 봉우리 이름이다. 축융봉【祝融峰】중국의 남악(南嶽)인 형산(荊山)의 최고봉으로 남방으로 내려갔던 한유, 두보, 소동파 등 많은 시인들이 이 봉우리를 노래하였다. 여기서는 필자가 백의(白衣)로 평양에 갔다가 다시 영해로 귀양올 때 본 금강산을 뜻한다. 축융자개【祝融紫蓋】자개와 축융(祝融)은 모두 산봉우리 이름으로, 형산(衡山)의 72봉(峯) 가운데 축융봉이 가장 높고, 자개봉이 그 다음이라고 한 것을 이른 말인데, 일설에는 자개봉이 가장 높다고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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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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