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치의【緇衣】검은 옷. 경대부(卿大夫)가 사조(私朝)에 거할 때에 입던 조복(朝服)으로 시경(詩經) 정풍(鄭風) 치의(緇衣)에 “치의가 정말 걸맞나니, 옷이 해지면 내 또다시 주리로다.[緇衣之宜兮 敝予又改爲兮]”라고 하였는데, 이는 정(鄭) 나라 환공(桓公)과 무공(武公)이 서로 잇따라 주(周) 나라 사도(司徒)가 되어 직책을 훌륭하게 수행하자 이를 찬미하여 읊은 것이다. 치의【緇衣】치의는 예기(禮記)의 편명. 치의는 본디 정(鄭) 나라 시(詩)로서 어진 이 좋아하는 것을 노래한 것인데, 치의편의 소(疏)에서 공영달(孔穎達)은 “치의는 어진 이 좋아하기를 후히 함을 훌륭하게 여긴 것이다.” 하였다. 치이【鴟夷】가죽 주머니로 만든 술 담는 그릇이다. 치이【鴟夷】치이자피(鴟夷子皮)의 준말로, 춘추시대 월(越)나라 범려(范蠡)의 별호인데, 구천(句踐)을 도와 오 나라를 멸망시킨 뒤에 구천과는 안락을 함께 누릴 수 없음을 알고 오호라는 물길을 따라 제(齊) 나라로 가서 성명을 고치고 스스로 치이자피(鴟夷子皮)라 불렀다 한다. 《史記 越王句踐世家》 치이자【鴟夷子】월 상국(越相國) 범려(范蠡)가 왕 구천(句踐)을 도와 오(吳) 나라를 멸한 뒤에 벼슬을 사양하고 오호(五湖)에 노닐며 성명을 고쳐 치이자피(鴟夷子皮)라 했다. 치이(鴟夷)는 가죽주머니라는 뜻으로 세태를 따라 가죽주머니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는 뜻. 치이자【鴟夷子】춘추 시대 초(楚) 나라 사람 오원(伍員). 그의 아버지 사(奢)와 형 상(尙)이 초평왕(楚平王)에게 피살되자, 오(吳) 나라로 망명하여 초 나라에 원수를 갚았음. 그 뒤 오왕(吳王) 부차(夫差)는 간신(姦臣)인 태재 비(太宰嚭)의 말만 믿고 오원에게 촉루검(屬鏤劍)을 주어 자살하게 한 다음, 그의 시체를 치이(鴟夷)에 넣어 강물에 띄웠으므로 그를 치이자(鴟夷子)라 함. 장유시에, “吾觀鴟夷子 才格出尋常”이라고 보임. 치이자피【鴟夷子皮】춘추(春秋) 때 월(越) 나라의 모신(謀臣)인 범여(范蠡)가 제(齊) 나라에 가서 바꾼 이름. 그는 오(吳) 나라가 멸망한 뒤에 서시(西施)를 배에 싣고 오호(五湖)에서 노닐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吳越春秋》 치인설몽【痴人說夢】바보를 상대로 하여 어떤 말을 할지라도 처음부터 소용이 없음을 뜻한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 종작없이 지껄이는 짓. 치자【穉子】어린 아들 치자림【梔子林】사찰(寺刹)을 말함. 불서(佛書)에서 치자를 담복(薝蔔)이라 하는데, 인도(印度)에 특히 많이 있는 것으로, 꽃이 희고 향기가 매우 좋다고 한다. 치자환주【癡子還珠】옛날 하수(河水) 가에 가난한 자가 살고 있었는데, 아들이 물 속에 들어가 천금의 구슬을 얻어 오자, 아버지는 말하기를, “어서 갖다 버려라. 이는 필시 이룡(驪龍)의 턱 밑에 있던 것인데, 마침 그 이룡이 졸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네가 어찌 살아 남았겠느냐?”하였다 한다. 치장【植杖】지팡이를 땅에다 꽂고서 김을 매는 것을 말한다.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하조장인(荷蓧丈人)을 만나 공자의 행방을 묻자, 공자를 조롱하는 말을 하고는 지팡이를 꽂고서 계속 김을 맸다[植其杖而芸]는 이야기가 전한다. 《論語 微子》 치재【致齋】치재는 제사나 불공(佛供)을 드리기 위하여 전날에 주육(酒肉)을 끊고 출입을 하지 못하게 하며 재계(齋戒)하는 것이다.
10/20/30/40/50/60/70/80/90/100/10/20/30
|
|
|
|
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
|
|
|
||
Copyright (c) 2000 by Ansg All rights reserved <돌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