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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七釋】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潛虛丈人 違世遁俗 恬淡淸玄 渾沌淳樸 薄禮愚學 無爲無欲 均同死生 混齊榮辱……” 칠설【七說】환린(桓驎)의 아들 환빈(桓彬)의 저작으로 전해지기도 함. 칠성【七姓】후량(後梁)ㆍ요(遼)ㆍ후당(後唐)ㆍ후진(後晉)ㆍ후주(後周)ㆍ송(宋) 등 7국을 말함. 칠성미【七聖迷】길 잃은 것을 뜻함. 장자(莊子) 서무귀(徐無鬼)에 “황제(黃帝)를 모시는 일곱 성인[七聖]이 양성(襄城)의 들판에서 길을 잃었다.” 하였음. 칠성미양야【七聖迷襄野】황제(黃帝) 등 일곱 성인이 대도(大道)를 찾으러 떠났다가 양성 들판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중 목마 동자(牧馬童子)를 만나 천하를 다스리는 법을 얻어듣고는 천사(天師)라고 절을 하고서 물러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莊子 徐无鬼》 칠시【七始】한(漢) 나라 때의 음악 이름. 음률(音律)을 천(天)ㆍ지(地)ㆍ인(人)ㆍ춘(春)ㆍ하(夏)ㆍ추(秋)ㆍ동(冬) 일곱 가지의 시작에 비긴 것이다. 칠신탄탄【漆身呑炭】몸에 옻칠을 하고 불붙은 숯을 삼킨다는 뜻으로, 복수를 위하여 몸을 괴롭힌다는 뜻의 고사성어. 칠실【漆室】신분에 지나친 근심을 함을 이름. 춘추 시대 노(魯)나라 칠실읍(漆室邑)에 사는 한 여인이 나라일을 걱정하였다는 데서 온 말이다. 칠실우【漆室憂】춘추 시대 노 나라 칠실이란 마을에 미가녀가 있었는데, 기둥을 안고 울었다. 이에 누가 묻기를 “시집을 못 갔기 때문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어찌 그렇겠는가. 나라를 걱정하기 때문이다.”고 했다는 고사. 《烈女傳 仁智 魯漆室女傳》 칠십이구【七十二鷗】추사의 당호(堂號)임. 칠십이봉【七十二封】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태산(泰山)과 양보(梁父)에 봉선(封禪)한 자가 칠십이가(七十二家)였다.” 하였다. 칠십이신【七十二神】72는 천지의 음양 오행(陰陽五行)의 성수(成數)라 하여 수많은 것을 칭한다. 칠십장계삼동리【七十長溪三洞裏】나부산이 유심(幽深)하고, 괴기(塊奇)하여 그 안에 긴 시내가 70군데이고, 동천(洞天)이 세 군데가 있다. 칠십진구추【七十眞九雛】공자의 72제자가 모두 도를 통하여 봉황새처럼 훌륭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공자의 제자는 3천 명이었는데 직접 육예(六藝)에 통한 자가 72명이었다. 《史記 卷四十七 孔子世家》 칠십칠자【七十七字】우비(禹碑) 비문의 글자 수. 그 비문이 일흔일곱 자로 되어 있음. 《琅琊代醉編 禹碑》 칠애【七哀】칠애는 위진(魏晉) 시대 악부(樂府)의 시제(詩題)로, 후한(後漢) 말의 왕찬(王粲)과 삼국 시대 위(魏) 나라 조식(曹植)과 진(晉) 나라 장재(張載)의 ‘칠애시(七哀詩)’가 전하는데, 일곱 가지의 슬픈 감정을 담아 내었다는 해제(解題)가 붙어 있다. 칠애시【七哀詩】칠애시는 위진(魏晉) 시대 악부(樂府)의 일종인 시 제목이다. 위(魏) 나라 왕찬(王粲), 조식(曹植)과 진(晉) 나라 장대(張戴) 등이 칠애시를 지었는데 사회의 동란을 반영하고 슬픈 감정을 표현하는 오언시(五言詩)이다. 당(唐) 나라 여향(呂向)은 조자건의 칠애시 주에서 “칠애는, 아파서 슬프고 의리상 슬프고 느꺼워 슬프고 원망스러워 슬프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슬프고 입으로 탄식하여 슬프고 코가 시어서 슬픈 것이다.”라고 하였다. 《文選》
10/20/30/40/50/60/70/80/90/100/10/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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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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