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글닷컴ː명언명구/사전

하늘구경  

 

 

 

 

하낙도서【河洛圖書】주역(周易) 계사상(繫辭上)에 “하도는 중국 고대 복희씨(伏犧氏)가 왕 노릇 할 때 하수(河水)에서 용마(龍馬)가 그림을 가지고 나왔는데, 복희씨가 그 그림을 본떠 8괘(卦)를 그렸으며, 낙서 역시 우(禹) 임금 때 낙수(洛水)에서 거북이 그림을 가지고 나와 우 임금이 그것으로 홍범(洪範)을 지었다.” 하였는데 여기서는 별을 가리킨 것이다.

하남【河南】하남 정씨(河南程氏)로, 송 나라 때의 유학자인 정자(程子)를 가리킨다.

하남백숙【河南伯叔】하남은 중국 낙양(洛陽)의 별칭. 하남의 형제는 그 곳에서 이학(理學)을 천명한 정호(程顥)와 정이(程頤) 형제를 말한다.

하남시【河南詩】하남(河南)은 호가 명도(明道)인 정호(程顥).”부귀하여도 음하지 않고 빈천하여도 즐기니, 남아가 이 경지에 이르면 바야흐로 호웅일세.[富貴不淫貧賤樂男兒到此方豪雄]" 라는 시를 말한다. 《二程全書 卷三十八 秋日偶成》

하내【河內】한나라 구순(寇恂)이라는 사람이 하내(河內)태수로 정치를 잘하여서 백성들이 임금께 구순이 임기가 끝났으니 한 임기만 더 있게 해주기를 바란다고 탄원하였다 한다.

하내구공【河內寇公】하내 태수로 있던 구순(寇恂)을 말한다. 후한서(後漢書) 구순전(寇恂傳)에 “광무황제(光武皇帝) 건무(建武) 3년에 영천(潁川)에 도둑이 크게 일어나자, 하내 태수로 있는 구순을 불러 도둑을 치게 하였더니, 순이 이르러 도둑을 모두 평정하였다. 그 뒤 광무제의 남정(南征)에 종군하여 영천을 지날 때 영천 백성들이 거가(車駕)를 막고 ‘원컨대 폐하께서는 1년간만 더 구공을 머물게 하여 주십시오.’ 하였다.” 한다.

하내절【河內節】일찍이 하내(河內) 지방에 화재가 나서 천여 가호가 불탔으므로, 경제(景帝)가 급암(汲黯)을 시켜 그 곳을 순시하게 하였는데, 그가 하내에 갔다가 하남(河南) 지역을 둘러본 결과, 그 곳에는 수한(水旱)으로 인해 가난한 백성이 만여 가호나 되었는바, 그 중에 혹은 부자(父子)가 서로 잡아먹기까지 하는 지경이었으므로, 그가 편의에 따라 부절(符節)을 가지고 하남의 창고 곡식을 흩어서 빈민들을 구제했던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一百二十》

하내학【河內學】하내는 중국 황하(黃河) 이북 지방으로 하남성(河南省) 일대를 말하는데, 송 나라 이학(理學)의 태두(泰斗)인 정이(程頤)의 출생지로서 정이를 가리킨다. 곧 정이의 학통을 이어받았다는 것임.

하담【荷潭】충청북도 충주(忠州) 가차산면(加次山面)에 있는 지명이다.

하담이립【荷擔而立】외적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짐으로써 백성들이 모두 가재도구 등을 등에 지고 어깨에 메고서 피난길을 떠나게 됨을 이른 말이다.

하당경북두【何當傾北斗】실권 없는 관직 생활은 아무 쓸모 없다는 뜻. 시경(詩經) 소아(小雅) 대동(大東)에, “북에는 국자 모양의 북두성이 있지만 국이나 술을 뜰 수는 없네.” 하여, 관직에 있는 것이 허울일 뿐 별로 쓰임새가 없음을 비유하였음.

하당지질【下堂之疾】증자(曾子)의 제자인 악정자춘(樂正子春)이 당을 내려가다가 발을 다쳤다[下堂而傷其足]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禮記 祭義》

 

10/20/30/40/50/60/70/80/90/100/10/20/30/40/50/60

 

   

 

 

 

 

 

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한비자 / 육도삼략 / 소서 / 손자병법 / 전국책 / 설원 / 한서 / 고사성어 / 옛글사전

소창유기 / 격언연벽 / 채근담(명) / 채근담(건) / 명심보감(추) / 명심보감(법) / 옛글채집

 

 

www.yetgle.com

 

 

Copyright (c) 2000 by Ansg All rights reserved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