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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화【羲和】역사 속에서의 희화(羲和)란 장력지관(掌曆之官) 즉 일관(日官)이 된다. 하지만 신화 속에서의 희화는 태양을 수레에 태우고 달리는 태양의 어머니이다. 희화【羲和】요(堯)의 시대에 희(羲)는 해를 맡은 벼슬이고 화(和)는 달을 맡은 벼슬이다. 희화【羲和】태양을 모는 마부 이름이다. 매일 여섯 마리의 용이 끄는 수레에 태양을 싣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운행하다가 해가 들어가는 우연(虞淵)이라는 곳에서 멈춰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희화【羲和】희씨(羲氏)와 화씨(和氏)는 요임금 때의 천문(天文)을 맡은 일관(日官)이다. 희화여자【羲和女子】해의 수레를 모는 어자(御者). 희화국의 여자라 한다. 《山海經》 희화편【羲和鞭】희화(羲和)는 해[日]가 탄 수레를 몰고 다니는 자. 이백(李白)의 장가행(長歌行)에, “큰 힘으로 하늘 땅이 돌아가는데 희화의 채찍 멎을 때가 없다네.[大力運天地 羲和無停鞭]" 하였음. 희황【羲皇】복희씨(伏羲氏) 이전 즉 태고(太古) 때의 희황상인(羲皇上人). 번잡한 세속을 버리고 뜻을 고상하게 가짐을 일컬은 말. 진(晉)의 도잠(陶潛)은 항상 말하기를 “월북창 아래 누워서 시원한 바람이 잠깐 불어오면 스스로 ‘희황상인’이라 이른다.” 하였다. 《晉書 卷九十四 陶潛傳》 희황【羲皇】희황상인(羲皇上人)의 준말로, 태고(太古) 때 사람을 일컬으며, 전하여 세상을 잊고 편히 숨어사는 사람을 말한다. 진서(晉書) 은일전(隱逸傳)에 “도잠(陶潛)이, 여름에 한가히 북창 아래 누워 산들바람을 쐬면서 스스로 희황상인이라 하였다.” 한다. 희황북창하【羲皇北窓下】은거 생활이 매우 만족함을 뜻함. 진(晉) 나라 때 고사(高士)인 도잠(陶潛)이 일찍이 “여름날 북쪽 창 아래 높이 드러누워 있을 때 맑은 바람이 솔솔 불어오면 내가 스스로 희황상인(羲皇上人)이라 이르노라.” 한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九十四》 희황상인【羲皇上人】진(晉) 나라 때의 은사(隱士) 도잠(陶潛)의 자호이다. 도잠이 북창(北窓) 아래 높이 누워서 희황상인이라 자칭한 데서 온 말이다. 도연명(陶淵明)의 여자엄등소(與子儼等疏)에 “五六月中 北窓下臥 遇涼風暫至 自謂是羲皇上人”이라 하였다. 도잠은 본디 음률(音律)을 몰랐으므로, 줄 없는 거문고(無絃琴)하나를 두고서 매양 친구들과 모여 술이 거나할 때면 이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거문고의 운취만 알면 되었지, 어찌 줄의 소리를 수고롭히랴.[但識琴中趣 何勞絃上聲]”하였다. 《晉書 卷九十四》 희황시【羲皇時】희황은 복희씨(伏羲氏)로, 태고의 시대를 말한다. 희황인【羲皇人】물욕의 속박이 없는 태고 시대의 백성이란 뜻이다. 도잠(陶潛)이 여름철에 한가로이 북창(北窓) 아래 누워 있다가 맑은 바람이 불어오면 “나는 바로 희황 이전의 사람이다.” 했다. 《晉書 隱逸傳》 희희【嘻嘻】스스로 만족하게 여기는 모양, 즐거워 웃는 소리 희희낙락【喜喜樂樂】매우 기쁘고 즐거워함 희힐설천비【羲頡洩天秘】처음으로 문자를 만들어 쓰기 시작하였다는 말이다. 복희는 팔괘(八卦)를 그어 서계(書契)를 만들었고, 황제(黃帝)의 신하였던 창힐은 새의 발자국을 보고 문자를 창작하였다고 한다. 《孔安國 尙書序》 힐굴오아【詰屈聱牙】힐굴오아는 문장이 몹시 어렵고 난삽하여 읽기가 힘듦을 말하는데,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에 “주고와 은반은 힐굴오아하다.[周誥殷盤 詰屈聱牙]”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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