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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옹【牧翁】목은(牧隱)이색(李穡)을 가리킨다. 이색의 묘가 한산(韓山)의 가지현(加知峴)에 있다. 목와【木瓦】명황잡록(明皇雜錄)에 “귀비의 아우 괵국부인(虢國夫人)에 대한 임금의 총애가 대단한 터이라 위사립(韋嗣立)의 집을 탈취하여 그 당(堂)을 넓혔는데 뒤에 다시 위씨에게로 반환되었다. 어느 때 큰 바람에 나무 토막들이 굴러서 당위로 떨어졌으나 기와가 조금도 파손되지 않았기에 살펴보니 다 단단한 나무로 조각된 기와였다.” 하였다. 목우경【睦禹卿】우경은 목장흠(睦長欽)의 자(字)이다. 목우무전【目牛無全】이는 극도의 경지에 이른 것을 비유한 것이다. 문혜군(文惠君)이 포정(庖丁)에게 묻기를 “그대는 어찌 그리도 소를 잘 잡는가?”하니, 포정이 대답하기를,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道)이므로 이미 기술의 경지를 벗어났습니다. 제가 처음에 소를 잡을 때 소 몸만 보이다가 3년이 지나자 소 몸이 세부적으로 나뉘어 보였고 지금에 와서는 마음 속으로 보지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고 하였다. 《莊子 養生主》 목우유마【木牛流馬】제갈량이 위(魏)와 싸울 때 험준한 산길에 군량을 운반하기 위하여 썼다는 나무 소와 딸딸이말. 그 제작법(촌법)이 그의 집(集)에 자세히 적혀 있으나, 그 작용은 미상. 목우파【牧牛派】고려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의 계파를 말한다. 목은【牧隱】목은은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인 이색(李穡)의 호. 자는 영숙(穎叔). 그는 이제현(李齊賢)에게 수학하여 성리학에 밝았고, 그의 문하에서 권근(權近)ㆍ김종직(金宗直)ㆍ변계량(卞季良) 같은 제자들이 배출되었음. 목이【木耳】버섯의 일종. 죽은 뽕나무 등에 많이 나는데 사람의 귀 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에 이름했다. 목인석심【木人石心】의지가 굳어 어떠한 유혹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 목작약【木芍藥】이백집(李白集)서에 “개원(開元) 시대에 목작약을 좋아하기 시작하여 침향정(沈香亭)앞에 심었다. 마침 꽃이 만발하자 임금은 소야거(炤夜車)를 타고 귀비는 보련(步輦)으로 뒤를 따라 구경했다.” 하였다. 이백집(李白集) 청평조(淸平調) 일절(一絶)에 “명화와 미인 둘이 서로 좋아하니, 길이 군왕의 웃음 띤 눈길 사로잡았네.[名花傾國兩相歡 長得君王帶笑看]”하였고, 또 천보유사(天寶遺事)에 “임금이 귀비를 가리켜 ‘말할 줄 아는 꽃[解語花]이다.’ 했다.” 하였다. 목재【牧齋】명 나라 전겸익(錢謙益)의 호이다. 만력(萬歷) 때 진사에 급제하여 예부 시랑을 지냈고 당시에 문장가로 이름났다. 목재처【牧齋妻】원래 아내가 없음. 목재(牧齋)는 옛 제(齊)의 처사(處士) 목독자(牧犢子)를 말한다. 목독자는 나이 50이 넘도록 아내가 없었는데, 들에 나무하러 나갔다가 암꿩ㆍ수꿩이 사이 좋게 노는 것을 보고 마음에 느끼는 바 있어 치조비(雉朝飛)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늙어 아내 없는 자를 일러 목독(牧犢)이라고 하는 전고(典故)가 생겼음. 《古今注 音樂》 목저【牧猪】돼지를 사육하는 비천한 일을 이름. 진(晉) 나라 때 도간(陶侃)이 일찍이 자기 속관(屬官) 가운데 술 마시고 잡기(雜技)를 즐기는 자들을 징계하기 위하여 술그릇과 놀음 기구들을 모두 강물에 던져 버리고 말하기를, “놀음이란 목저노(牧猪奴)들이 하는 유희(遊戲)일 뿐이다.”고 하였다. 목저노【牧猪奴】도박꾼의 별칭. 돼지나 소를 먹이는 무식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목적【木賊】만호(萬戶)를 일컫는 말. 명종 때 만호들이 부임하는 날부터 군졸들을 수탈하 기로 마음먹기 때문에 시속에서 만호를 ‘목적’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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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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