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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고【巫山高】초 양왕(楚襄王)이 일찍이 고당(高唐)에서 낮잠을 자는데 꿈에 한 여인이 와서 “저는 무산(巫山)의 여자로서 임금님이 이곳에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왔으니, 침석(枕席)을 같이 해주소서.” 하므로, 양왕이 그 여인과 하룻밤을 잤는데, 다음날 아침에 그 여인이 떠나면서 “저는 무산의 양지쪽 언덕에 사는데, 매일 아침이면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됩니다.”고 했다는 고사를 근거로 하여 노래한 것이다 무산대관【巫山臺觀】성천의 이름난 관소(館所)와 누각을 가리킨다. 특히 강선루(降仙樓) 아래에는 대동강(大同江)이 흐르고, 강 건너편에 유명한 무산(巫山) 12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예로부터 관서팔경(關西八景)의 하나로 꼽혀 왔다. 무산모우【巫山暮雨】남녀의 정사(情事)를 비유한 말이다. 초 양왕(楚襄王)이 일찍이 고당(高唐)에서 놀다가 낮잠을 자는데, 꿈에 한 여자가 와서 “저는 무산의 여자로 임금님이 여기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왔으니, 침석(枕席)을 같이 해 주십시오.” 하므로 임금은 하룻밤을 같이 잤는데, 다음날 그 여자가 떠나면서 “저는 무산의 양지쪽 높은 언덕에 사는데, 매일 아침이면 구름이 되고 저녁에 비가 됩니다.” 하였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宋玉 高唐賦》 무산십이봉【巫山十二峯】망하(望霞)ㆍ취병(翠屛)ㆍ조운(朝雲)ㆍ송만(松巒)ㆍ집선(集仙)ㆍ취학(聚鶴)ㆍ정단(淨壇)ㆍ상승(上昇)ㆍ기운(起雲)ㆍ비봉(飛鳳)ㆍ등룡(登龍)ㆍ성천(聖泉)인데, 바로 선경을 말한다. 《方輿勝覽》 무산우운【巫山雨雲】초 양왕(楚襄王)이 고당(高唐)에서 놀다가 낮잠을 자는데 꿈에 한 부인이 와서 “여기에 임금님이 계시다는 말을 듣고 왔으니, 원컨대 침석을 같이 해 주십시오.” 하므로, 하룻밤을 같이 잔 뒤, 이튿날 아침에 부인이 떠나면서 “저는 무산의 양지쪽 높은 언덕에 사는데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됩니다.” 하였다는 고사이다. 《宋玉 高唐賦》 무산운우【巫山雲雨】무산운우는 송옥(宋玉)의 고당부서(高唐賦序)에, “첩(妾)은 무산(巫山)의 남쪽 고구(高丘)의 깊숙한 데 있어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며, 아침저녁으로 양대(陽臺)의 아래서 보낸다.” 하였으므로, 뒷사람이 이를 근거하여 운우(雲雨)로써 남녀의 정사에 비하였음. 무산운우【巫山雲雨】초 회왕(楚懷王)의 고사. 고당부주(高唐賦注)에 “시집가기 전에 죽은 적제(赤帝)의 딸 요희(姚姬)를 무산 남쪽에 매장한 때문에 무산의 계집이라 전해 왔다. 회왕이 그곳에 출유(出遊)하여 낮잠을 자는데 꿈속에 한 신녀(神女)가 나타나, 무산의 계집이라 자칭했다. 드디어 그녀와 교합(交合)하고는 그곳에 관(觀)을 짓고 이름을 조운(朝雲)이라 했다.” 하였다. 무산음금수【巫山吟錦樹】두보(杜甫)의 부수시(復愁詩) 십이 수(十二首) 가운데 제일수(第一首)에 “인가의 연기는 궁벽한 곳에서 나오고 범의 자취는 새 발자국이 보이네[人煙生處僻 虎跡過新蹄]”하였고, 제십수(第十首)에 “무산엔 아직 아름다운 나무가 있고 남국엔 또 누런 꾀꼬리로다[巫山猶錦樹 南國且黃鸝]”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集 卷二十》 무산일단운【巫山一段雲】사조(詞調) 또는 악부(樂部)의 이름. 본문의 시체(詩體)가 ‘무산일단운’의 체로 지은 것이라는 뜻이다. 무산지몽【巫山之夢】무산(巫山)의 꿈이란 뜻으로, 남녀간의 밀회(密會)나 정교(情交)를 일컬음. 특히 미인과의 침석(枕席)을 말하기도 한다. (陽臺, 陽臺不歸之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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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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