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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米家】미가는 송(宋) 나라의 유명한 서화가(書畫家)인 미불(米芾)을 가리킨다. 미가서화【米家書畫】송 나라 명필 미불(米芾)이 자기의 서화와 고서화를 배에 싣고 강에 떠다녔으므로 황정견은 시를 지어주기를 “澄江夜夜虹貫月 定有米家書畫船" 이라 하였음. 미가선【米家船】송 나라 미원장(米元章)이 이름난 서화(書畵)를 많이 모았는데, 그것을 배에다 싣고 강으로 가니 밤에 광채가 뻗치었는데, 사람들이 미가홍월선(米家虹月船)이라 칭하였다. 미가주【米家舟】뛰어난 서화가(書畫家)라는 말이다. 북송(北宋)의 저명한 서화가 미불(米芾)이 항상 배에다 서화를 가득 싣고 강호를 유람했던 고사가 있다. 미간광척【眉間廣尺】양 미간의 넓이가 한 자이다. 미거기광【微去箕狂】미자는 은 나라 주(紂)의 서형(庶兄)으로 주의 무도함을 보고는 나라가 망할 줄을 알고 미리 송(宋) 나라로 가서 종사(宗祀)를 보존하였고, 기자(箕子)는 주의 삼촌으로서 주의 무도함을 간해도 듣지 않자 거짓 미친 체하여 곤욕을 받았었다.《論語 微子》 미거조상최【未去鳥相催】두보(杜甫)의 시에 “둥지 틀려는지 저녁 새들 시끌벅적, 어서 돌아가자고 어린 소년 보채누나.[欲捿群鳥亂 未去小童催]”라는 표현이 있다. 《杜少陵詩集 卷20 晩晴吳郞見過北舍》 미견백의인【未見白衣人】9월 9일에 술이 없음을 한탄한 말. 동진(東晉) 때의 고사 도잠(陶潛)이 9월 9일에 술이 떨어져 술 생각이 간절하였는데, 마침 그때 강주 자사(江州刺使)왕홍(王弘)이 흰옷 입은 사자(使者)를 시켜 술을 보내왔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미공비급문【眉公祕笈文】미공은 명(明) 나라 진계유(陳繼儒)의 호, 비급문은 그의 저서인데 괴벽하고 비장(祕藏)한 것들을 적었다. 그는 문장과 필법이 뛰어나 왕세정(王世貞)ㆍ동기창(董其昌) 등과 함께 유명하였다. 《明史 卷二百九十八 陳繼儒傳》 미궐비왕록【薇蕨非王祿】백이(伯夷)ㆍ숙제(叔齊)가 주 나라 녹봉을 마다하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었던 일을 인용한 것임. 미근가헌【美芹可獻】어느 농부가, 등에 내리쪼이는 햇빛이 따스하고 또 미나리가 그리도 맛이 있어 그것들을 임금께 바쳤으면 좋겠다고 한 자가 있었다는 것임. 《文選 嵆康 與山濤書》 미금상【美錦傷】자피(子皮)가 윤하(尹何)로 읍대부(邑大夫)를 시키려 하자 자산(子産)이 “아직 어리니, 한 고을의 행정을 배워가면서 하도록 할 수는 없다. 괜히 그 사람을 해치는 결과만 된다. 이는 마치 아름다운 비단을 기술 없는 자에게 재단을 맡기면 비단을 해치는 결과와 같다.” 한 데서 인용된 말이다. 《左傳 襄公 三十一》 미급판여수【未及板輿隨】어버이를 극진히 봉양해 보겠다던 소망도 이루지 못했다는 말이다. 반악(潘岳)의 ‘한거부(閑居賦)’에 “태부인(太夫人)을 판여(板輿)에 모시고서 멀리 경기(京畿) 지방을 구경하기도 하고 가까이 집 뜨락을 소요하기도 한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미남궁【米南宮】미남궁은 송대(宋代)의 서화가(書畵家) 미불(米芾)의 별칭. 그는 일찍이 남조(南曹)의 벼슬을 지냈는데, 여기서는 그의 이름에 쌀 미(米) 자가 있기 때문에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미단【未旦】未明. 날이 아직 밝기 전. 날샐 녘. 미달불감상【未達不敢嘗】공자(孔子)에게 계강자(季康子)가 약을 보내왔을 때, 공자가 절하고 받으면서 “나는 이 약의 성분을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감히 맛보지는 못하겠습니다.[丘未達 不敢嘗]”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논어(論語) 향당(鄕黨)에 실려 있다. 미대【彌代】蓋世이다. 세상에서 뛰어나 견줄 만한 사람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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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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