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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불원【迷道不遠】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길을 헤맨다. 멀지 않다는 뜻. 즉, 곧 본 길을 찾게 됨을 의미. 미도종비별유동【迷道終非別有東】부처의 말에, “정신을 잃은 사람이 동서(東西)를 분변하지 못하여 동쪽을 보고 서쪽이라고 착각하였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먼저 서쪽이라 하던 그 자리가 곧 동쪽이요, 새로 동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이 중생(衆生)이 진(眞)을 몰라보고 정신없이 허망(虛妄)하였다가 하루아침에 진을 깨닫고 보면 허망하던 그 자체(自體)가 곧 진이요, 새로운 진이 따로 없는 것이다.” 하였다. 미도효종유시춘【未到曉鐘猶是春】당(唐) 나라 시인 가도의 삼월회일증유평사시(三月晦日贈劉評事詩)에 “삼월이라 정히 삼십일에 당하였노니 풍광이 괴로이 읊조리는 나를 작별하누나 그대와 함께 오늘 밤엔 잠을 자지 말자꾸나 새벽 종이 울리기 전엔 아직도 봄이라오[三月正當三十日 風光別我苦吟身 共君今夜不須睡 未到曉鐘猶是春]” 한 것을 이른 말이다. 미돈【迷豚】자신의 아들을 일컬음. 미랄품강금【味辣禀剛金】오행(五行)으로 볼 때 매운 맛은 금(金)에 속하는 것을 가리킨다. 미랑【薇郎】포정사(布政司)의 낭관(郎官)을 가리키니 포정사를 미성(薇省)ㆍ미원(薇垣) 또는 자미성(紫薇省)이라 한 데서 유래된 것이다. 미려【尾閭】전설에 나오는, 바닷물이 빠져나가는 구멍이다. 장자(莊子) 추수(秋水)에, “천하의 물은 바다보다 큰 것이 없으니, 모든 물이 끊임없이 모여도 찰 줄 모르고, 미려(尾閭)로 끊임없이 새어 나가도 마를 줄 모른다.” 하였다. 일명 옥초(沃燋)라고도 한다. 미려혈【尾閭穴】바닷물이 빠져 나간다는 동해 밑바닥의 골짜기 이름이다. 미로서함중【米老書函重】미로는 송(宋) 나라 때의 서화가인 미불(米芾)을 말하는데, 그는 특히 고서화(古書畫)를 매우 좋아하여 고서화를 대단히 많이 수집하였으므로, 그를 미가서화선(米家書畫船)이라고 일컬었던 데서 온 말이다. 미록【麋鹿】자신을 야인(野人)으로 자처하는 겸사로 쓰인 말. 미록성【糜鹿性】사슴처럼 초야(草野)에서 뛰놀고 싶어하는 성품을 말한다. 참고로 소동파(蘇東坡)의 ‘차운공문중추관견증(次韻孔文仲推官見贈)’에 “我本麋鹿性 諒非伏轅姿”라는 시구가 있다. 미루【迷樓】수 양제(隋煬帝)가 일찍이 변수(汴水) 가에다 극도로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을 짓고는, 신선이 여기에서 놀더라도 의당 절로 헤매게 될 것이라 하여, 이를 미루(迷樓)라 명명하고서 극도로 즐기다가 나라를 망치고 말았는데, 뒤에 당(唐) 나라가 강남(江南)을 평정하고 나서 수 양제를 뇌당(雷塘) 땅에 개장(改葬)하였다. 미루요【迷樓謠】미루(迷樓)는 누(樓)의 이름. 수 양제(隋煬帝)가 만년에 황음과 사치를 극도로 하여, 전무후무하게 웅장 광대한 궁전을 새로 지은 다음, 자신이 직접 그 궁전을 둘러보고는 “아무리 진선(眞仙)이 여기서 놀더라도 의당 절로 어리둥절해질 것이다.” 하고 ‘미루’라 이름한 데서 온 말이다 미륵사【彌勒寺】무강왕(武康王)이 일찍이 마한국을 세우고, 하루는 사자사(獅子寺)로 행차하던 도중 못에서 세 미륵불(彌勒佛)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바로 지명법사(知命法師)에게 명하여 용화산(龍華山) 아래 미륵사를 창건함과 동시에 또 세 미륵상(彌勒像)을 세웠다고 하는데, 특히 이 곳의 석탑(石塔)은 대단히 커서 높이가 여러 길이나 되어 동방(東方)의 석탑들 가운데 가장 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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