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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찰【監察】감찰시어사(監察侍御史)의 약칭. 백관(百官)을 규찰하고 기타 농상형옥(農桑刑獄) 등을 감찰함. 《唐書 百官志》 감천궁【甘泉宮】한대(漢代)의 궁궐 이름. 감천송【甘泉頌】감천송은 한 나라 때 양웅(揚雄)이 지은 감천부(甘泉賦)를 가리킨다. 감천전【甘泉殿】궁전 이름. 협서성(峽西省) 감천산(甘泉山) 위에다 진시황(秦始皇)이 처음세운 것인데, 뒤에 한 무제(漢武帝)가 증축하였음. 《漢書 揚雄傳》 감천화【甘泉火】감천은 한 나라 때 상군(上郡) 조음현(雕陰縣)의 산 이름으로 북쪽의 흉노(匈奴)와 접경지대인데, 오늘날의 섬서성(陝西省) 부주(鄜州)이다. 한 문제(漢文帝) 때 흉노가 북쪽 변경을 침입하므로 감천산에 척후병을 두고 봉화시설을 설치하여 그들을 경계하였다고 한다. 양(梁) 나라 서비(徐悱)의 고의수도장사개등낭야성시(古意詶到長史漑登琅耶城詩)에 “척후와 봉화로서 감천 경계코 상곡군 설치하여 누란국 막아[甘泉驚烽候 上谷拒樓蘭]”하였다. 《文選 卷二十二 遊覽》 감체【欿傺】걱정하여 물끄러미 있다. 감탄고토【甘呑苦吐】달면 삼키고 쓰면 뱉음. 즉, 자기 비위에 맞으면 받아들이고 안 맞으면 돌아섬. 또는 이기적인 사귐이나 야박한 세태와 인정의 간사함을 일컫는 말 감통【感通】허령(虛靈)한 자신의 마음으로 느껴 천하 만물의 이치를 통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상(上)에 “고요히 움직이지 않는 경지에서 느껴 마침내 천하의 사리를 통달한다.[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라고 하였다. 감하【監河】감하후(監河侯)의 준말로 돈이나 곡식을 빌려 주는 사람을 뜻한다. 장자(莊子) 외물(外物)에 “장주(莊周)가 집이 가난해서 감하후에게 곡식을 꾸러 갔다.” 하였다. 감하【減下】줄임, 줄여 없앰, 감함, 제함, 삭감, 삭제, 감면, 감축 등의 뜻, 한 마디로 말하면 다중(多衆) 가운데에서 일부를 ‘줄인다’는 뜻이며, 내려 깎는다든지 특별히 인원ㆍ관직을 감하거나 면하는 데에만 쓰는 제도어도 아니다. 下는 떨어 없앤다는 뜻으로 減과 거의 같은 뜻이다. 감하속【監河粟】감하는 서하(西河)의 현령(縣令)이었다는 감하후(監河侯). 장자(莊子) 외물(外物)에 “장주(莊周)가 집이 가난하여 감하후에게 곡식을 빌리러 갔었는데, 감하후는 ‘좋소, 나는 머지 않아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거둬들일 것이니, 그렇게 되면 삼백금(三百金)을 빌려 주겠다.’ 하자, 받지 않았다.” 하였다. 감호【鑑湖】중국 절강성에 있는 호수 이름. 경호(鏡湖)ㆍ장호(長湖) 등으로도 불리워짐. 감호일곡【鑑湖一曲】하지장(賀知章)이 늙어서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회계(會稽)로 돌아가는데 임금이 회계에 있는 감호(鑑湖)의 한 굽이[一曲]를 주었다. 경포와 감호는 한자(漢字)로 서로 비슷하다. 감흥【感興】주자(朱子)는 공자의 춘추필법(春秋筆法)을 따라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지었으며, 또 감회를 일으키고 감흥시(感興詩)를 지었다. 갑검초소사두광【匣劍初銷射斗光】간장(干將)과 막야(莫邪)의 두 명검(名劍)이 땅속에 묻혀서 하늘 위의 두우(斗牛) 사이에 자기(紫氣)를 내뿜고 있다가 발굴되어 세상에 나왔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36 張華列傳》 갑골문자【甲骨文字】갑골문자는 거북이 껍질(배와 등껍질 모두 사용)이나 소어깨뼈 등에 새겨 넣은 문자들을 말한다. 기원전 14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는데 원시 국가에서 앞날을 점을 치는 내용과 그 결과를 기록한 내용이 많다. 그래서 갑골문을 복사(卜辭)라고도 한다. 날카로운 송곳이나 돌 같은 것으로 딱딱한 곳에 새기다 보니 자획 형태가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갑관【甲觀】한(漢) 나라 태자궁(太子宮)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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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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