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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곡【江南曲】강남곡은 강남채련곡(江南採蓮曲)으로, 벗끼리 서로 화답하는 악부의 곡명인데 전별하는 시를 뜻하기도 한다. 강남곡【江南曲】강남곡이란 강남에서 연밥을 따는 광경을 형용한 옛 악부시(樂府詩)이다. 강남만리【江南萬里】백거이(白居易)의 시에 “누가 한 조각 강남 흥으로 하여금 나를 좇아 은근히 만리를 오게 했나.” 하였다. 강남부【江南賦】북주(北周) 유신(庾信)이 고향이 그리워 지은 애강남부(哀江南賦)로서 고향을 그리며 짓는 글을 뜻한다. 강남역사【江南驛使】친지(親知)의 소식을 말한다. 남조 송(南朝宋)의 육개(陸凱)가 강남(江南)에서 매화 가지 하나를 꺾어 장안(長安)에 있는 친구 범엽(范曄)에게 역마 탄 사자 편에 보내 준 고사가 있다. 《太平御覽 卷970》 강남조【江南調】악부(樂府) 상화곡(相和曲)으로 강남곡과 같은데, 멀리 헤어져 있는 부부가 서로 그리워하는 애절한 심경을 노래하는 뜻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남조(南朝) 양(梁)의 유혼(柳惲)의 오언고시, 당(唐) 이익(李益)의 오언절구, 당 저광희(儲光羲)의 오언절구 등이 있다. 강남죽【江南竹】대나무가 특이하게 좋다는 뜻이다. 중국 강남(江南)에서 나는 대는 관악기(管樂器)를 만들기에 좋기로 유명한데, 양 간문제(梁簡文帝) 쟁부(箏賦)에 “강남의 대는 농옥(弄玉)이 봉(鳳)의 울음소리를 낸 퉁소가 있다.” 하였다. 강남탄【江柟歎】두보의 초당 앞 강가에 서 있던 2백 년 된 굴거리나무가 풍우에 뽑힌 것을 탄식하여 읊은 ‘남수위풍우소발탄(柟樹爲風雨所拔歎)’을 말하는데, 첫 구절이 “倚江柟樹草堂前”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강남탄(江柟歎)이라고 한 것이다. 《杜少陵詩集 卷10》 강노지말【强弩之末】힘찬 활에서 튀겨 나온 화살도 먼 데까지 다 가면 힘이 다해서 마지막에는 노(魯)나라에서 나는 얇은 명주도 뚫을 수 없다는 문맥에서 유래. (强弩之末, 力不能入魯縞). 강대한 힘일지라도 최후의 쇠약해짐에는 어쩔 수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강능【岡陵】만수무강을 축원할 때 쓰는 표현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천보(天保)에 “如山如阜 如岡如陵”이라 하였다. 강담【江潭】상강(湘江)의 못. 강담행음【江潭行吟】임금에게 쫓겨난 신세라는 뜻. 초사(楚辭) 어부(漁父)에 “굴원(屈原)이 방축(放逐)되어 강담(江潭)에 노닐며 택반(澤畔)에 행음(行吟)했다.” 하였다. 강당좌【姜唐佐】소식(蘇軾)의 문인. 강도【江都】강도는 지금의 강소성(江蘇省)으로, 수(隋) 나라 양제(煬帝) 때의 서울이다. 당 나라 고조(高祖)가 이곳에서 수 나라를 멸망시켰다. 강돈【江豚】물 속에서 사는 돼지처럼 생긴 짐승. 허혼(許渾)의 금릉회고(金陵懷古) 시에, “돌제비가 구름 털면 개인 날도 비가 오고, 강돼지가 물 뿜으면 밤 되어 바람불지.[石燕拂雲晴亦雨 江豚吹浪夜還風]" 하였음. 강동【江東】진양(晉陽). 강동독보【江東獨步】진(晉) 나라 왕탄지(王坦之)가 약관(弱冠)에 재명을 날려 강동 지방에 필적할 만한 자가 없자, 당시에 “성덕이 절륜한 치가빈이요, 강동의 독보 왕문도로세.[盛德絶倫郗嘉賓 江東獨步王文度]”라고 일컬었다고 하는데, 문도는 왕탄지의 자(字)이고 가빈은 극초(郗超)의 소자(小字)이다. 《晉書 王坦之傳》 강동주【江東舟】부귀영화로 인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경우로서, 초한(楚漢) 시대 항우(項羽)가 한왕(漢王)과의 전쟁에서 크게 패하고 단신으로 다시 고향인 강동(江東)으로 건너가려다가 탄식하기를 “내가 강동의 8천 자제들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건너가 싸우다가 지금 살아 돌아온 자제가 하나도 없으니, 내가 무슨 면목으로 강동의 부형들을 볼 수 있겠는가.” 하고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史記 項羽本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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