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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안【建安】동한(東漢) 마지막 황제인 헌제(獻帝)의 연호. 이때 조자건(曹子建) 부자와 업중(鄴中)의 일곱 사람들의 시가 유명했으므로 건안체(建安體)라는 말까지 생겼음. 《滄浪詩話 詩體》 건안다【建安茶】양만리(楊萬里)의 시에 “傳呼惠山水 來瀹建安茶" 라 하였음. 건안다사【建安多士】한 나라 헌제(獻帝)의 연호로, 이때 이른바 건안칠자(建安七子)로 불리던 공융(孔融), 진림(陳琳), 왕찬(王粲), 서간(徐幹), 완우(阮瑀), 응창(應瑒), 유정(劉楨)과 조조(曹操), 조비(曹丕) 등이 문장을 과시하였는데, 이들은 백성들의 고달픈 삶에 대해 비분강개하는 강건한 시풍을 가지고 있었다. 건안칠자【建安七子】건안은 후한(後漢) 헌제(獻帝) 때의 연호. 칠자(七子)는 곧 이 연간에 시문(詩文)의 대표적인 작가로 일컬어진 일곱 사람, 즉 공융(孔融)ㆍ진림(陳琳)ㆍ왕찬(王粲)ㆍ서간(徐幹)ㆍ완우(院瑀)ㆍ응탕(應瑒)ㆍ유정(劉楨)을 말한다. 건암【健菴】건암은 청(淸) 나라 때의 서건학(徐乾學)의 호인데 독례통고(讀禮通考)를 저술하였다. 건업【建業】건업은 삼국(三國)시대 오(吳)의 손권(孫權)이 옮겨 도읍을 정한 곳이다. 건원사덕【乾元四德】주역(周易) 건괘(乾卦) 단사(彖辭)에 “위대한 건(乾)의 원(元)은 만물 시발점의 바탕이므로 하늘을 통괄한다.”고 하였는데, 그 주에 “이는 천도(天道)로 건괘의 뜻을 밝히고 또 원형이정(元亨利貞)이 사덕(四德)이라는 것을 분석하여 설명하였다.”고 하였다. 건위【蹇衛】약하고 못생긴 당나귀. 건유【虔劉】방언(方言)에 “죽이고 도적질함을 건유라 한다. 진(秦), 진(晉), 송(宋), 위(衛)의 사이에서 죽이는 것은 유라 하고 도적질을 건이라 한다.” 하였음. 건유【乾維】건방(乾方). 우리나라의 의주(義州) 분야이다. 건유【褰帷】백성을 직접 대면하고 보살피려는 방백의 성의를 가리키는 말이다. 후한(後漢)의 가종(賈琮)이 기주자사(冀州刺史)가 되어 수레에 붉은 휘장을 내리고 가다가 임지에 당도해서는 말하기를 “자사는 마땅히 멀리 보고 널리 들어 잘잘못을 규찰해야 할 것인데 어찌 도리어 수레에 휘장을 내려 스스로 귀와 눈을 가려서야 되겠느냐.” 하고 관례를 뒤엎고 그 휘장을 걷어버렸다 한다. 《後漢書 卷31 賈琮傳》 건유당음【褰帷棠陰】은혜로운 정사를 펴는 지방장관을 뜻한다. 후한(後漢)의 가종(賈琮)이 기주 자사(冀州刺史)로 부임할 때 백성을 친밀히 대하기 위하여 수레의 휘장을 걷어버리도록[褰帷] 지시한 고사가 있으며, 《後漢書 賈琮傳》 주(周) 나라 소공(召公)이 감당나무 그늘[棠陰] 아래에서 은혜로운 정사를 행했던 고사가 있다. 《史記 燕召公世家》 건유위부노【褰帷慰父老】수레의 휘장을 걷고 부임(赴任)하는 지방의 노인들과 만나 풍속이나 인심을 널리 아는 것. 옛날 자사(刺史)들은 부임길에 모두 수레에 휘장을 드리워 외부 사람들과 만나지 않았는데, 후한(後漢)의 가종(賈琮)은 기주 자사(冀州刺史)가 되어 기주에 이르자 “자사는 마땅히 시청을 넓혀야 하는데 어찌 도리어 휘장은 드리우는가.” 하고는 어자(御者)에게 명하여 걷어치우도록 하였다. 건장【建章】한 무제(漢武帝) 때 미앙궁(未央宮) 서쪽에 세운 건장궁(建章宮)을 가리키는데, 전하여 궁궐을 일컫는 말이다. 건장궁【建章宮】한 무제(漢武帝) 때 백양대(柏梁臺)가 불에 타자 다시 대규모의 건장궁(建章宮)을 축조했는데, 그 설계 규모가 천문만호(千門萬戶)였다고 한다. 《漢書 郊祀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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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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