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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枯禪】세상사 다 잊고 앉아서 참선(參禪)만 하는 승려. 고선행【高善行】선행은 의병장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의 아들인 고용후(高用厚)의 자(字)이다. 고성낙일【孤城落日】외로운 성에 해는 짐. 도와 줄 사람도 없는 외롭고 서글픈 사정. 해가 지는 배경으로 성(城) 하나만이 외로이 있음. 스러질 때가 얼마 남지 않아 근심되고 서러운 지경을 비유하는 말이다. 고성방가【高聲放歌】큰소리로 떠들고 마구 노래 부름. 고소【苦笑】씁쓸한 웃음, 쓴웃음 고소【顧邵】자는 孝則, 吳郡 사람. 27세이 집안을 일으켜 豫章太守가 되었다. 고소【姑蘇】중국 강소성(江蘇省) 오현(吳縣)에 있는 고소산을 말함. 고소대【姑蘇臺】강소성(江蘇省) 오현(吳縣)의 서쪽 고소산(姑蘇山)에 있는 누대(樓臺). 춘추 시대 월왕 구천(越王句踐)은 오왕 부차(吳王夫差)에게 회계산(會稽山)에서 크게 패한 후 쓸개를 씹으며[嘗膽] 복수할 것을 꾀하다가 저라산(苧蘿山)에서 얻은 미인 서시(西施)를 부차에게 바치니, 부차는 그의 미모에 혹하여 고소대를 크게 짓고는 날마다 유희(遊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으며 이것을 간하는 충신 오자서(伍子胥)를 죽였다. 이 때문에 결국 오 나라는 월 나라에게 멸망을 당했는데, 월(越)의 대부 범려(范蠡)는 성공한 다음 공명을 피하여 고소대에 있던 서시와 함께 오호(五湖)에 배를 띄우고 스스로 치이자피(鴟夷子皮)라고 성명을 고친 다음, 월 나라를 떠나 한가하게 살았다. 《史記 越王句踐世家》 고소대【姑蘇臺】전국 시대 때에 오나라 오자서(伍子胥)가 오나라가 오래지 않아 망할 것을 탄식하기를, “마침내 고소대(姑蘇臺)에 들사슴들이 노는 것을 보리라.” 하더니, 과연 오나라가 망하고 뒤에 그 땅에 나라를 세운 이도 그것을 거울삼아 경계[戒]할 줄 모르고 여러 나라가 망하였음을 탄식한 것이다. 고소록【姑蘇鹿】오자서(伍子胥)가 오왕(吳王)에게 간(諫)하다가 들어주지 않고 죽임을 당하면서, “마침내 나라는 망하고 궁중 안 고소대(姑蘇臺)에 들사슴이 와서 놀게 될 것이다.” 하였다. 고소미록유【姑蘇麋鹿遊】고소는 춘추 때의 오(吳) 나라 서울이었다. 오 나라가 망하여 그 서울이 쑥밭이 되어 산짐승이 와서 놀게 되었다. 고소원신겸【故素怨新縑】옛 시에, “새 여자는 비단을 잘 짜고, 옛 여자는 깁을 잘 짠다네.” 하였다. 고소(故素)는 전의 아내를, 신겸(新縑)은 새 아내를 뜻한다. 고송유수【古松流水】소식이 말하기를 “予嘗獨遊廬山白鶴觀……聞棋聲於古松流水之間……" 이라 하였음. 고수【誥授】나라에서 공신(功臣)과 그 선조(先祖)에게 작호(爵號)를 내리는 영전(榮典)인데, 진대(晉代)에 시작되어 당대(唐代)에 와서 갖추어졌으나, 그 제도는 왕조마다 같지 않았다. 청대(淸代)에서는 본인에게 내리는 봉작(封爵)을 수(授)라 하고 증조부모ㆍ조부모ㆍ부모ㆍ처에게 내리는 작호 중에 생존한 이에게는 봉(封), 죽은 이에게는 증(贈)이라 하였다. 5품 이상관에게 내리는 고명(誥命)은 고수ㆍ고봉(誥封)ㆍ고증(誥贈)이라 하고 6품 이하관에게 내리는 고명은 칙수(勅授)ㆍ칙봉(勅封)ㆍ칙증(勅贈)이라 하였다. 1품관은 작호가 증조부모ㆍ조부모ㆍ부모에까지 미치고 3품관 이상은 조부모ㆍ부모에까지 미치며 7품관 이상은 부모와 처에까지 미치고 9품관 이상은 겨우 자기 몸에만 미쳤는데, 여기에는 각각 정한 예가 있어 예수(例授)ㆍ예봉(例封)ㆍ예증(例贈)이라 하였다.
10/20/30/40/50/60/70/80/90/100/10/20/30/40/50/60/70/80/90/200/10/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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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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