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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苽亭】고려 의종(毅宗) 때 정서(鄭敍)의 호. 정서는 고려조에서 벼슬이 내시랑중(內侍郞中)에 이르고 재예(才藝)가 있어 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환자(宦者)들의 모략을 받아 동래(東萊)로 유배되어 오랫동안 풀리지 않자, 금곡(琴曲)을 지어 타며 뜻을 붙였는데, 그 가사(歌詞)가 매우 처량하여 뒷사람들이 이를 과정곡(瓜亭曲)이라 불렀다. 과정훈【過庭訓】“공자가 일찍이 혼자 서 계신데, 아들 이(鯉)가 뜰을 지나니, 공자가 그에게, ‘시(詩)를 공부하느냐.’”라고 물으며 가르침을 베풀었다. 과제약적자【科第若摘髭】아주 쉽게 과거 급제한 것을 비유한 말. 한유(韓愈)가 최립지(崔立之)에게 부친 시에 “해마다 과거 급제를 따내되 턱 밑의 수염을 뽑듯 하누나[連年收科第 若摘頷底髭]” 한 데서 온 말이다. 《韓昌黎集 卷五》 과조【瓜棗】한(漢) 나라 때 방사(方士) 이소군(李少君)이 일찍이 해상(海上)에서 노닐다가 선인(仙人) 안기생(安期生)을 만났는데, 안기생은 크기가 마치 오이[瓜]만한 대추[棗]를 먹고 있더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封禪書》 과즉물탄개【過卽勿憚改】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는 뜻으로, 어떤 잘못을 범했을 때는 그 즉시 바르게 고치라는 말이다. 과체【瓜遞】임기가 차서 벼슬이 갈림을 말한다. 과축【薖軸】과축은 시경(詩經) 고반(考槃) 편에 나오는 말로, 한가한 은퇴 생활을 뜻한다. 과탈자【夸奪子】명리(名利)만을 좇는 무리들을 말한다. 과파【戈波】이 두 글자는 서법(書法)의 과법(戈法)과 파법(波法)을 가리키는 말로서, 글씨 쓰는 것을 이른 말이다. 과피접【瓜皮艓】과피선. 소선(小船)의 일종임. 과하마【果下馬】키가 작아 ‘과일나무 아래’로도 다닐만한 말[馬]. 키가 작은 조랑말 따위로서 타고서 과실나무 밑으로 지날 수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었다. 《後漢書 東夷傳》 과하참【果下驂】아주 작은 말을 이름. 과수(果樹)의 밑을 다니기에 알맞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과혁지시【裹革之屍】말가죽에 싼 시체. 전쟁에서 싸우다 죽은 시체를 말한다. 과혁초심【裹革初心】나라를 위해 적과 싸워 장렬하게 전사한 뒤 말가죽에 싸여 돌아오려고 했던 당초의 마음이란 뜻이다. 후한(後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사나이는 마땅히 전쟁터에서 죽어 말 가죽에 시체를 싸 가지고 돌아와 땅에 묻혀야 한다.[男兒要當死于邊野 以馬革裹尸還葬耳]”고 말한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後漢書 卷24 馬援列傳》 과호교렵【誇胡校獵】한 성제(漢成帝)가 호인(胡人)에게 뻐기려고 사냥터인 장양궁(長楊宮)에 가서, 군민으로 하여금 사방에서 짐승을 쫓게 해 대량으로 잡은 뒤, 사웅관(射熊館)에 이들을 풀어놓고는 호인에게 맨손으로 잡도록 한 고사가 있다. 《漢書 揚雄傳 下》 과휘일【戈揮日】노 양공(魯陽公)이 한(韓) 나라와 싸울 때에 날이 저물어 가므로 창으로 해를 휘둘러 삼사(三舍)를 멈추게 했다 한다. 《事文類聚 天道部》 곽가금혈【郭家金穴】한(漢) 광무제(光武帝)가 그의 처남 곽황(郭况)에게 금보(金寶)를 많이 내려 주었으므로 사람들이 그 집을 금혈(金穴)이라 하였다. 곽거병【霍去病】서한(西漢)때 흉노(匈奴)를 정벌하여 공적을 크게 세운 장수. 곽검교【郭檢校】검교가 하남왕(河南王) 이총병(李摠兵)의 명(命)을 받들고 조선 조정(朝廷)에 빙문(聘問)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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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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