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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처【悽悽】마음이 매우 구슬픈 모양, 굶어 병든 모양, 입은 은혜를 갚으려고 마음먹는 모양, 마음의 안정을 잃은 모양 처처【凄凄】신선한 바람, 차고 쓸쓸한 모양, 초목의 무성한 모양, 흐르는 모양,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는 모양 척【擲】내던지다. 척강조석망【陟岡朝夕望】형(兄)을 그리는 마음을 뜻함. 시경(詩經) 위풍(魏風) 척호(陟岵)에 “저 언덕에 올라서 형을 바라본다[陟彼岡兮 瞻望兄兮]” 한 데서 온 말이다. 척강좌우【陟降左右】주 문왕(周文王)이 죽은 뒤 그 영혼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상제(上帝)의 좌우에 있다는 말이 시경(詩經) 대아(大雅) 문왕(文王)에 나온다. 척계광【戚繼光】명 나라 산동(山東) 봉래(蓬萊) 사람으로, 병법에 조예가 깊어 기효신서(紀效新書)ㆍ연병기실(練兵紀實) 등 저명한 병서를 저술하였으며, 절강(浙江)의 참장(參將)으로 있으면서 왜구(倭寇)를 무찌르는 데에 힘을 쏟아 변방이 태평하였다 한다. 척공사륙【척仜사륙】요사(遼史) 악지(樂志)에 의하면, 대악성(大樂聲)이 있어 각조(各調) 가운데 협음(協音)한 소리가 모두 열 가지인바, 즉 오(五)ㆍ범(凡)ㆍ공(工)ㆍ척(尺)ㆍ상(上)ㆍ일(一)ㆍ사(四)ㆍ육(六)ㆍ구(勾)ㆍ합(合)이라 하였으니, 아마 여기서 나온 말인 듯한데, 여기서 네 글자마다 인부(人部)를 붙인 것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척교【蹠蹻】옛날의 큰 도적인 도척(盜蹠)과 장교(莊蹻)를 말한다. 척금인【擲金人】세설(世說) 덕행편(德行篇)에 “관녕(管寧)과 화흠(華歆)이 함께 후원(後園)에서 채전(菜田)의 풀을 매다가 땅에 금조각이 있는 것을 보고 관영은 못 본 듯이 호미질하여 돌 기와장이나 다름없이 여겼는데 화흠은 그 금을 쥐어보고서 내던졌으며, 또 일찍이 동석(同席)하여 글을 읽을 때 수레를 타고 문앞을 지나는 자가 있었는데 관녕은 여전히 글을 읽었고 화흠은 글 읽기를 폐하고 나가 구경하였다. 그러자 관녕은 자리를 쪼개어 갈라 앉으며 하는 말이 그대는 나의 벗이 아니다고 하였다.” 하였음. 척기【陟屺】시경(詩經) 위풍 척호(陟岵)에 “저 산에 올라 어머니를 생각한다.[陟彼屺兮 瞻望母兮]" 하였다. 척기【滌器】전한(前漢)의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집이 가난하여 아내 탁문군(卓文君)과 함께 쇠코잠방이를 입고 시장에서 술을 팔며 그릇을 닦았다. 《漢書 司馬相如傳》 척기시【陟屺詩】척기시는 시경(詩經) 위풍(魏風) 척호(陟岵)의 시를 말하는데, 제2장(章)에 “저 기(屺)에 올라 어머니를 바라노라.” 하였다. 기(屺)는 곧 산(山)의 뜻이다. 척기첨【陟屺瞻】효자(孝子)가 집을 떠나면서 어머니를 사모한 데 비유한 말이다. 시경(詩經) 위풍(魏風) 척고(陟岵)에 “저 기(屺)에 올라 어머니를 바라보네.” 하였다. 기(屺)는 초목이 무성한 산을 말한다. 척기회요【跖耆回夭】도척은 고대(古代)의 큰 도적의 이름. 일설에는 유하혜(柳下惠)의 아우라고도 한다. 안회(顔回)는 공자(孔子)의 제자 가운데 으뜸가는 현인으로서 32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척등공장【擲騰空杖】당(唐) 도사(道士) 나공원(羅公遠)이 개원(開元) 연간 추석날 밤에 현종(玄宗)을 모시고 궁중에서 달을 구경하다가, 계수나무 지팡이를 공중에 던지니 큰 다리[橋]가 되는지라, 현종을 청하여 함께 올라 월궁(月宮)에 이르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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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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