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초산【焦山】강소성(江蘇省) 단도현(丹徒縣) 동쪽에 있는 산으로 일명 부옥산(浮玉山)이라고도 하는데, 삼국(三國) 때의 고사(高士) 초선(焦先)이 이 산에 은둔하였기 때문에 초산이라 했으며 초선은 천하가 생긴 이래 1인자라 하여 일초(一焦)라 불렀다. 초산【楚山】굴원(屈原)이 조정에서 쫓겨나 실의에 잠겼던 초(楚) 나라의 산야라는 뜻이다. 초산【楚山】정읍(井邑)의 옛 이름이다. 초산집【椒山集】명 나라 양계성(楊繼盛)의 문집. 초삽【苕霅】두 시내 이름. 당서(唐書) 장지화전(張志和傳)에, “물 위에 둥실 뜬 집을 지어 초계 삽계 사이 오가는 게 원이라네.[願爲浮家泛宅 往來苕霅間]" 하였음. 초삽범택【苕霅泛宅】안진경(顔眞卿)이 호주 자사(湖州刺史)가 되었을 때 장지화가 찾아가 알현하자 안진경이 그의 부서진 배를 고치기를 청하니,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가택(家宅)을 물에 띄우고 초계(苕溪)ㆍ삽계(霅溪) 사이를 왕래하고 싶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唐書 卷一百九十六》 초삽종래【苕霅從來】당(唐) 나라 때 은사(隱士)인 장지화(張志和)가 친상(親喪)을 당한 뒤로는 벼슬을 그만두고 강호(江湖)에 살면서 연파조도(煙波釣徒)라 자호하였는데, 안진경(顔眞卿)이 호주 자사(湖州刺史)로 있을 때 그가 안진경을 찾아가 뵙자, 안진경이 그의 배가 망가졌음을 보고 새것으로 바꾸기를 청하니, 장지화가 말하기를, “나는 집을 물에 띄우고서 초계(苕溪)와 삽계(霅溪) 사이를 왕래하는 것이 소원이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唐書 卷一百九十六》 초상【椒觴】설날에 임금과 어버이께 세배 드릴 때 분지술[椒酒]을 나눈다. 분지는 옥형성(玉衡星)의 정(精)이므로 몸을 가볍게 하고 늙음을 안 탄다고 한다. 초상【椒觴】옛날 풍속에 산초의 꽃이나 열매로 술을 담궜다가 정월 초하루에 자손이 장수를 축원하는 뜻으로 자기 집안의 어른에게 올렸다고 한다. 《初學記 卷四 四民月令》 초상【蕉裳】파초 잎이 치마처럼 넓다는 뜻이다. 초생【楚甥】초생은 사위를 뜻한다. 초생당【草生塘】진(晉) 나라 사영운(謝靈運)이 그의 종제 혜련(惠連)을 꿈속에 보고 나서 지은 시에 ‘못가에는 봄풀이 돋아났다네[池塘生春草]’라는 명구를 지었다는 데서 흔히 멀리 헤어진 아우를 그리는 고사로 쓰인다. 초생옥소【焦生屋燒】삼국 시대 위(魏) 나라 초선(焦先)의 고사. 고사전(高士傳)에 “그는 들불[野火]에 집을 태운 뒤에 밖에서 자는데, 마침 큰 눈이 퍼부었으나 옷을 벗어 멘 채 누워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고 여겨 다가가 보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한다. 초서【草書】해서를 실용적인 데에서 더욱 빨리 쓰고자 한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글자의 발달 순서는 행서 → 초서 순이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이다. 초서는 한대에 유행하였는데 빠르게 쓸 수는 있었으나 남이 알아보기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다. 즉 초서와 느린 해서의 단점을 보완하여, 해서보다는 조금 획을 흘려서 쓰며, 초서보다는 덜 간략한 글자체를 유지하는 것이다. 행서는 생활서로서뿐만 아니라 획의 변화무쌍함 때문에 예술서로서도 각광을 받을 수 있었다.
10/20/30/40/50/60/70/80/90/100/10/20/30
|
|
|
|
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
|
|
|
||
Copyright (c) 2000 by Ansg All rights reserved <돌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