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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도【蜀道】파촉(巴蜀)의 잔도(棧道). 중국 사천성(四川省)에 있는 촉(蜀) 땅으로 통하는 고갯길인데, 길이 몹시 험하여서 험한 길의 대명사로 쓰인다. 이백(李白)은 촉도난(蜀道難)이라는 시를 지어 “촉도의 어려움 하늘 오르는 것보다도 어렵다.” 하였다. 촉도난【蜀道難】여러 시인들이 읊은 촉도난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당 나라 이백(李白)이 지은 촉도난이 가장 유명하다. 촉도는 중국 사천성(四川省) 촉(蜀) 땅으로 통하는 고갯길인데, 길이 몹시 험하여서 험한 길의 대명사로 쓰인다. 촉도매복【蜀都賣卜】어떤 사람이 하(河 황하)의 근원을 찾아 부인이 빨래함을 보고 물으니, “여기가 천하(天河)다.” 했다. 한 돌은 주기에 가지고 돌아와 엄군평(嚴君平)에게 물으니, 그가 가로되, “이것은 직녀(織女)의 베틀 바치는 돌이다.” 했다. 엄군평이 촉(蜀) 나라의 도읍 성도(成都)에서 점장이 노릇을 하면서 충효와 신의(信義)로 사람들을 가르쳤으며, 날마다 백전(百錢)을 얻으면 곧 가게를 닫고 노자(老子)를 읽었다. 전설(傳說)이 많음. 촉도읍옥인【蜀道泣玉人】옥인(玉人)은 미인이란 뜻으로 양 귀비(楊貴妃)를 가리키는데, 당 현종(唐玄宗)이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피하여 파촉으로 피난갈 적에 양 귀비를 처형했으므로 한 말이다. 촉도청천취안대【蜀道靑天醉眼擡】이태백이 촉도난(蜀道難)이란 시를 지었는데, 그 시의 끝에 “촉(蜀) 나라 길이 험하여, 푸른 하늘에 오르기보다도 어렵구나[蜀道之難 難於上靑天]" 라고 한 말에서 인용한 것이다. 촉도행【蜀道行】한(漢) 나라 왕손이 촉(蜀)에 익주 자사(益州刺史)로 부임하다가 가장 험한 공극(邛棘)을 어렵게 알지 않고 말을 채찍질하였다. 촉도행장【蜀道行裝】가진 재물이 없이 청빈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송(宋) 나라 조변(趙抃)이 필마로 촉 땅으로 들어갈 때 거문고 한 벌과 학 한 마리만 데리고 갔던 고사에서 유래한다. 《宋史 趙抃傳》 촉룡【燭龍】신명(神名). 눈을 뜨면 낮이 되고 눈을 감으면 밤이 된다고 한다. 회남자(淮南子) 추형훈(墜形訓)에 “촉룡이 안문(雁門)의 북쪽에 있어 위우(委羽)의 산에 가려 해를 보지 못한다.” 하였다. 촉룡【燭龍】촉룡은 촉음(燭陰)이라고도 하는데 종산(鍾山)의 신(神)이다. 신장(身長)이 천 리인데 입에 촛불을 머금고 천문(天門)에 비추며, 이 신이 눈을 뜨면 낮이 되고 눈을 감으면 밤이 되며 불[吹]면 겨울이 되고 숨을 내쉬면[呼] 여름이 된다 한다. 《山海經 海外北經》 촉루전락【髑髏全樂】장자(莊子)가 초(楚) 나라를 가다가 바짝 마른 해골을 만나서 말채찍으로 때리며 묻기를, “나라를 망치고 처형을 당해 이 모양이 되었는가, 굶어 죽어서 이 모양이 되었는가?" 하고는 그 해골을 베고 잤더니, 꿈에 해골이 나타나 말하기를, “그대가 말한 것은 모두 산 사람의 누(累)이고 죽은 사람은 그런 걱정이 없네. 죽음의 세계에는 위로 임금도 없고 아래로 신하도 없으며, 또 네 계절의 변화도 없네. 그리고 조용히 천지와 수명을 같이할 뿐이므로, 비록 임금 노릇하는 즐거움도 이 즐거움을 능가할 수가 없네.”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莊子 至樂》 촉루타남면【髑髏詫南面】장자(莊子) 지락(至樂)에, 장자와 해골의 대화 가운데 “위로 임금도 없고 아래로 신하도 없으며, 사시(四時)도 없는 가운데 천지(天地)를 춘추(春秋)로 삼고 있으니, 남면(南面)하는 임금의 즐거움이라 하더라도 이보다는 못할 것이다. 내가 어찌 남면하는 임금과 같은 즐거움을 버리고 다시 수고로운 인간 세상에 되돌아갈까 보냐.”라고 한 해골의 대답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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