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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堠】후는 이수(里數)를 기록한 토대(土臺)로, 한 후는 5리를 말한다. 정자통(正字通)에 “10리는 쌍후(雙堠), 5리는 척후(隻堠)이다.” 하였다. 후경【後勁】뒤를 맡은 정병(精兵)을 말함. 좌전(左傳) 선공(宣公) 22년에 “中權後勁" 이 있음. 후과【侯瓜】진(秦) 나라 광릉(廣陵) 사람인 소평(召平)이 동릉후(東陵侯)에 봉해졌었는데, 진 나라가 망한 뒤에 집이 가난하여 장안(長安)의 성 동쪽에 오이를 심어 생활하였다 하여 나온 말이다. 《史記 卷五十三 蕭相國世家》 후관【侯館】원래 관망용 소루(小樓)를 말하는데, 보통 왕래하는 관원이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역관(驛館)을 가리킨다. 후관이양월【候管移良月】초겨울 시월달이 돌아왔다는 말이다. 옛날에 절후(節候)를 알기 위해 대나무 통[竹管] 속에 갈대막을 태운 재를 채워 놓았는데, 절기가 돌아오면 해당되는 대나무 통 속의 갈대 재가 저절로 들썩거리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고 한다.《後漢書 志第1 律曆志上》 양월은 10월의 별칭이다. 후교【後交】자세히 알아 본 뒤에 맺는 교분(交分). 수(隋) 나라 왕통(王通)의 중설(中說) 위상(魏相)에 “군자는 먼저 가려 뽑은 다음에 교분을 맺고[君子先擇而後交] 소인은 먼저 교분을 맺고 나서 가려 뽑기 때문에 군자는 허물이 적고 소인은 원망이 많아지게 된다.” 하였다. 후락【後樂】‘천하의 근심거리를 누구보다도 먼저 근심하고, 천하의 즐거움을 누구보다도 뒤에 즐긴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는 말을 줄인 것으로, 송(宋) 나라 범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 나온다. 후래【後來】그 지역의 지방관으로 부임한 우수한 후배를 가리키는 말이다. 후래삼배【後來三杯】술자리에서 뒤 늦게 온 사람에게 먼저 권하는 석 잔의 술. 후령【緱嶺】주 나라 왕자진(王子晉)이 신선이 되어 후령(緱嶺)에서 학을 타고 갔다. 후리【候吏】도로(道路)에 빈객(賓客)을 전송하고 맞이하는 아전을 말한다. 후망【厚亡】노자(老子) 9장과 44장에, 많이 쌓아 놓으면 무너지는 것도 엄청나다[多藏必厚亡]는 말이 있다. 후명【後命】귀양 보낸 죄인에게 사약(死藥)을 내리는 것을 이른 말이다. 후목분장【朽木糞牆】썩은 나무에 조각하거나 부패한 벽토에 흙칠을 하여도 소용이 없다는 뜻. 쓸모 없는 사람을 비유하기도 하고 혼란한 세상을 비유하기도 한다. 후목불가조【朽木不可雕】공자의 제자 재여(宰予)가 낮에 잠을 자자, “썩은 나무에는 무엇을 새겨 볼 수가 없다.[朽木不可雕也]”고 공자가 평한 일화가 전한다. 《論語 公冶長》 후문【侯門】귀인(貴人)의 저택을 일컫는 말이다. 후문건절【後門建節】옛날 장군(將軍)이 환군(還軍)할 적에 맨 뒤에 국문(國門)을 들어오는 것을 공(功)으로 삼은 데서 온 말이다. 후문치자【候門稚子】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어린애는 문에서 기다리고 술은 통에 넘치누나.”란 말이 있다. 후미석독【厚味腊毒】국어(國語) 주어(周語) 하편에 “맛좋은 음식에는 심한 독이 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후미실석독【厚味實腊毒】국어(國語) 주어 상(周語上)에 “맛 좋은 음식에는 실로 극독물이 들어 있다.[厚味寔腊毒]”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후미(厚味)는 중한 녹봉(祿俸)을 비유한 말이다. 후백【侯伯】후작(侯爵)과 백작(伯爵)이다. 후보【候補】어떤 벼슬자리에 결원(缺員)이 있을 때 그 자리에 나아갈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10/20/30/40/50/60/70/80/90/100/10/20/30/40/5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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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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