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삼여【三餘】바쁜 가운데 잠깐 한가한 시간을 말함. 여는 세(歲)와 일(日)과 시(時)의 여(餘)인 동(冬), 야(夜), 음우(陰雨). 위략(魏略)에 “겨울은 해의 나머지이고 밤은 낮의 나머지이고 날이 흐린 것은 때의 나머지이다[冬者歲之餘 夜者日之餘 陰雨者時之餘].” 하였음. 공한(空閑)한 시간을 이용해서 독서하는 것을 뜻한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왕숙전(王肅傳)의 주(注)에 “학문을 함에 있어서 이 나머지 시간만 이용해도 충분하다[讀書當以三餘]”라 하였다. 도잠이 ‘책자(責子)’ 시에서 자기 자식들이 게을러서 공부하지 않는 것을 한탄하였다. 삼연【三淵】김창흡(金昌翕)의 호. 창협의 동생으로 시문에 뛰어났다. 삼연【參淵】공자의 제자들로 증자(曾子)의 이름이 삼(參)이요, 안자(顔子)의 자가 연(淵)이다. 삼연옹【三淵翁】조선 숙종 때의 시인인 김창흡(金昌翕)을 가리킨다. 삼연유사【三椽遺事】태조(太祖)이성계(李成桂)의 꿈을 해몽한 이야기인 석왕사(釋王寺)의 연기설화(緣起說話)를 말한다. 이성계가 어느날 밤 꿈에, 여러 닭이 만 집에서 일제히 울어대고 다듬이 소리가 천 집에서 동시에 나는데 몸은 무너진 집에 들어가서 서까래 세 개를 지고 나왔고 꽃은 휘날리고 거울은 떨어져 깨지는 꿈을 꾸었다. 이에 하도 이상하여 수소문 끝에 무학대사(無學大師)를 만나 꿈의 해몽을 부탁하였더니, 사양하다가 해몽하기를, “길몽이오. 만 집에서 닭이 고귀위(高貴位)하였으니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며, 천 집에서 다듬이 소리가 일제히 났으니 만 백성 천 벼슬들이 임금된 경사를 알리는 풍악소리요, 서까래 세 개를 지었으니 임금 왕(王) 자요, 꽃이 날렸으니 필경 열매를 맺을 것이요, 거울이 떨어져 깨졌으니 반드시 큰 소리가 날 것이라, 이는 임금이 될 꿈이니, 여기 설봉산(雪峯山)에 절을 짓고 기원하면 소원을 성취할 것이오.” 하였다. 이것이 이성계가 즉위하기 8년 전의 일로, 이성계는 기원소(祈願所)로 석왕사(釋王寺)를 짓고 길주(吉州)의 천불사(千佛寺)에서 오백나한을 배로 실어날라 석왕사에 안치시켰다는 내용의 설화이다. 삼오【三五】삼황오제(三皇五帝)를 가르킨다. 중국고대의 전설적 제왕, 3황(皇)은 일반적으로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을 가르키지만, 문헌에 따라서는 복희(伏犧), 신농(神農), 황제(黃帝)를 들기도 한다. 또는 수인(燧人), 축융(祝融), 여왜(女媧) 등을 꼽는 경우도 있다. 사마천은 3황(皇)의 전설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사기(史記)의 기술을 오제본기(五帝本紀)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마천이 5제(帝)로 든 것은 황제헌원(皇帝軒轅), 전욱고양(顓頊高陽), 제곡고신(帝嚳高辛), 제요방훈(帝堯放勳), 제순중화(帝舜重華) 등이며, 별도로 복희(伏犧), 신농(神農) 또는 소호(小昊) 등을 드는 경우도 있어 일정하지 아니하다. 원래 이 전설은 다양한 신화 전설이 혼입된 것이며, 도덕적 정치적으로 끌여들인 것이어서, 그 기원은 애매하다. 오행설이 일반화된 전국시대 말 이후 이야기 경향을 띠게 되었다. 삼오【三吳】지명. 오흥(吳興)ㆍ오군(吳郡)ㆍ회계(會稽), 또는 오왕(吳王)부차(夫差)의 도읍지인 고소(姑蘇), 비(濞)가 도읍했던 광릉(廣陵), 손권(孫權)이 도읍했던 건업(建鄴), 또는 동오(東吳)인 소주(蘇州), 중오(中吳)인 윤주(潤州), 서오(西吳)인 호주(湖州)등으로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르게 불리움. 양자강(揚子江)을 비롯한 많은 강하의 합류 지대로서 삼오수고(三吳水考)ㆍ삼오수리록(三吳水利錄)등이 만들어졌을 정도로 강하가 많은 곳임. 《四庫提要 史 地理類》 삼오기변【參伍機變】주역(周易) 계사 상에, “삼오(參伍)로써 변하여 그 수효를 착종(錯綜)한다.” 하였는데, 설문(說文)에, “세 사람이 서로 섞인 것을 삼(參)이라 하고 다섯 사람이 서로 섞인 것을 오(伍)라 한다.” 하였음. 삼오유애【三吳遺愛】삼오는 세 곳의 지명(地名)으로, 진(晉) 나라 때는 오흥(吳興), 오군(吳郡), 회계(會稽)를 말하고, 당(唐) 나라 때는 오흥(吳興), 오군(吳郡), 단양(丹陽)을 말하고, 송(宋) 나라 때는 소주(蘇州), 상주(常州), 호주(湖州)를 말한다. 진서(晉書) 손은전(孫恩傳)에, “천하에 군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진(晉) 나라 국운이 다하였다고 판단하여 백성을 선동하였더니, 삼오 지방의 백성들이 많이 따라왔다.” 하였다. 삼오에 끼친 사랑이란 이것을 지적하여 말한 것이다. 삼오재자삼한사【三吳才子三韓士】삼오(三吳)의 재자(才子)는 절강(浙江)에서 살던 육비(陸飛)ㆍ엄성(嚴誠)ㆍ반정균(潘庭筠)이며, 삼한(三韓)의 선비는 홍대용을 가리킨다. 삼오(三吳)는 여러 설이 있으나 대체로 오군(吳郡)ㆍ오흥(吳興)ㆍ회계(會稽)를 말한다. 삼오칠언【三五七言】삼오칠언은 시의 별체로서 당(唐)의 시인 이백(李白)이 일찍이 3자ㆍ5자ㆍ7자로 된 육구시(六句詩)를 지어 ‘삼오칠언’이라 제(題)하였다. 즉 “가을바람 시원도 하고, 가을달 밝기도 하여라. 낙엽은 모였다 다시 흩어지고, 갈가마귀는 나무에 앉았다 다시 놀래어 나도다. 서로 생각하니 어느날에나 만나 볼까? 이때 이 밤 심정 가누기 어렵네.[秋風淸 秋月明 落葉聚還散 寒鴉棲復驚 相思知見知何日 此時此夜難爲情]" 하였는데 바로 이 시의 체를 따른 것이다. 삼오풍미【三吳風味】삼오는 장강(長江) 하류 지역을 가리킨다. 진(晉) 나라 때 깨끗한 지조로 이름 높았던 장한(張翰)이 가을바람이 부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고향인 오중(吳中)의 순채국과 농어회가 생각나서 말하기를, “인생살이에 있어서는 뜻에 맞게 사는 것이 귀한 법인데, 어찌 벼슬에 얽매여서 수천 리 밖을 떠돌면서 명예와 관작을 노리겠는가.” 하고는, 드디어 수레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 고사를 가리킨다. 《晉書 卷92 文苑列傳 張翰》
10/20/30/40/50/60/70/80/90/100/10/20/30/40/50/60/70/80/90/200/10/20/30/40
|
|
|
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
|
|
|
Copyright (c) 2000 by Ansg All rights reserved <돌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