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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강실조추【蓴江失早秋】일찍 벼슬을 떠나지 못했음을 비유한 말. 진(晉) 나라 때 장한(張翰)이 일찍이 낙양(洛陽)에 들어가 동조연(東曹掾)으로 있다가, 어느 날 가을 바람이 불어오자 자기 고향인 오중(吳中)의 특산물인 순채와 그곳 오강(吳江)의 농어회가 생각나서 이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九十二》 순갱【蓴羹】진서(晋書) 장한전(張翰傳)에 “진(晉)의 문장가 장한은 고향이 오군(吳郡)이었는데, 제왕 경(齊王冏)의 동조연(東曹椽)으로 있다가 가을 바람이 불자 갑자기 고향의 명산물인 순채국과 농어회[鱸膾]가 생각나므로 ‘인생이란 자기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좋으니, 무엇 때문에 벼슬에 얽매여 타향에 있겠는가.’ 하고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하였다. 순갱로회【蓴羹鱸膾】진(晉) 나라 장한(張翰)이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고는 고향의 순채국과 농어회[蓴羹鱸膾]가 생각이 나서 곧장 사직하고 귀향했던 고사가 있다. 《晉書 卷92 文苑列傳 張翰》 순거【鶉居】주거(住居)가 일정하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순(鶉)은 메추라기인데, 이 새는 항상 야거(野居)하여 일정한 곳이 없다. 순경【順卿】순경은 고려 때의 직신 이존오(李存吾)의 자이다. 순공오타운【郇公五朶雲】순공은 당(唐) 나라 때의 명필로 순공에 봉해진 위척(韋陟)을 가리키고, 오타운은 오색(五色)의 드리운 구름[垂雲]을 뜻하는데, 위척은 항상 오채전(五采牋)에 서찰(書札)을 쓰되 모두를 시첩(侍妾)에게 쓰도록 맡겨버리고 자신은 서명(署名)만 하고서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쓴 척(陟)자는 오타운과 같다.”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남의 서찰을 높여서 일컫는 말이다. 《唐書 韋陟傳》 순구【純鉤】순구는 춘추 시대 월왕(越王)이 주조하였다는 명검(명劍)의 이름이다. 순군【巡軍】의금부(義禁府)의 별칭이다. 순군좌처형【荀君坐處馨】후한(後漢) 때 사람 순욱(筍彧)이 남의 집을 찾아갔다 오면, 그 앉았던 자리에서 사흘 동안이나 향기가 났다 한다. 《襄陽記》 순금【舜琴】공자가어(孔子家語) 변악해(辯樂解)에 “옛날에 순 임금이 오현금(五弦琴)으로 남풍시(南風詩)를 탔는데, 그 시에 ‘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의 불평을 풀어 줄 것이고, 남풍의 때 맞춤이여 우리 백성의 재산을 늘려 주리라는 노래가 있다.” 하였다. 순랑【舜廊】순임금의 조정이라는 말이다. 순랑고음사사부【順浪高吟思謝傅】동진(東晉)의 사안(謝安)이 손작(孫綽) 등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는데, 마침 폭풍이 불어 물결이 크게 일어나자 일행 모두가 안절부절못했으나, 사안만은 노래를 높이 부르며 태연자약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雅量》 순량【循良】법을 지켜 백성을 잘 다스리는 사람을 가리킨 말로, 곧 순리(循吏)와 같은 뜻이다. 순령복【荀令馥】후한(後漢) 때 순령군(荀令君)으로 칭송되었던 고사 순욱(荀彧)이 앉았던 자리는 3일 동안 여향(餘香)이 서려 있었다고 한다. 순령향【荀令香】순령은 상서령(尙書令)을 지낸 후한(後漢) 순욱(荀彧)의 별칭인데, 그가 일찍이 기이한 향을 얻어 몸에 지니고 다녔으므로 그가 앉은자리에는 삼 일 동안이나 향내가 없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태평어람(太平御覽) 양양기(襄陽記)에 “순욱이 남의 집에 앉았다가 돌아가면 그가 앉았던 방에 쳤던 장막에서 3일 동안 향내가 났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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