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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양【相羊】떠돌다. 머뭇거리다. 배회하다. 상양【商羊】큰 비가 올 무렵이면 한쪽 다리를 구부리고 춤을 춘다는 전설상의 새 이름이다. 전하여 홍수(洪水)나 수재(水災)의 예보의 뜻으로도 쓰인다. 공자가어(孔子家語) 변정(辯政)에 “天將大雨 商羊鼓舞" 라 하였음. 상양무【商羊舞】상양은 전설상의 새 이름인데, 이 새가 춤을 추면 큰 비가 내린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상업【相業】상업은 정승으로 이룬 업적을 뜻한다. 상여【象輿】신상(코끼리)의 수레. 상여【相如】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전국(戰國) 때의 인상여(藺相如)를 사모하여 스스로 상여(相如)라고 이름을 지었다. 장경(長卿)은 사마상여의 자(字)이다. 상여간도귀【相如間道歸】사기(史記) 인상여열전(藺相如列傳)에 “相如乃使其從者 衣褐懷其璧 從間道亡 歸璧于趙" 라 하였음. 상여갈【相如渴】한 나라 때 효문원(孝文園)의 영(令)을 지낸 사마상여(司馬相如)는 항상 소갈병을 앓았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상여굴진【相如屈秦】전국 시대 때 조(趙) 나라 혜문왕(惠文王)이 초(楚) 나라의 화씨벽(和氏璧)을 얻었는데, 진(秦) 나라 소왕(昭王)이 이를 빼앗고자 하여 거짓으로 15개의 성(城)과 바꾸자고 하였다. 조 나라에서는 화씨벽만 빼앗기고 성은 얻지 못할까 염려하여 진 나라에 사신으로 갈 사람을 구하였는데, 인상여(藺相如)가 가게 되었다. 인상여는 “진 나라에서 성을 주면 화씨벽을 진 나라에 줄 것이고, 성을 주지 않으면 화씨벽을 손상 없이 가지고 오겠다.” 하고는 진 나라로 갔는데, 소왕이 화씨벽만 빼앗고 성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인상여는 화씨벽에 흠집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면서 화씨벽을 손에 잡고 말하기를, “대왕이 성을 주지 않고 화씨벽을 빼앗으려고 하면 옥을 깨뜨려 버리겠다.” 하면서, 소왕에게 5일 동안을 재계(齋戒)하고서 받으라고 하였다. 소왕이 재계하는 사이에 인상여는 사람을 시켜서 몰래 화씨벽을 조 나라로 돌려보냈다. 소왕이 재계를 마친 뒤 화씨벽을 달라고 하자, 인상여는 “화씨벽은 이미 조 나라로 보냈다. 진 나라에서 먼저 15개의 성을 주면 조 나라에서 화씨벽을 당장 돌려보낼 것이다.” 하였다. 그 뒤에 인상여는 무사히 조 나라로 돌아왔으며, 진 나라에서는 화씨벽과 성을 바꾸지 않았다.《史記 卷81 藺相如列傳》 상여권유【相如倦遊】한(漢) 나라의 문인(文人), 사마상여(司馬相如). 그의 전기(傳記)에, “노는 데 지쳤다[倦遊].”는 말이 있다. 상여벽립【相如壁立】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임공(臨邛) 고을의 갑부인 탁왕손(卓王孫)의 딸 문군(文君)과 야합하여 함께 성도(成都)로 도망가서 살 때 매우 가난하여 살림살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한다. 《史記 卷一百七十七 司馬相如傳》 상여소【相如痟】상여(相如)의 소갈증이란 곧 한(漢) 나라 때 문장가인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지병인 소갈증을 말한다. 상여유사벽【相如猶四壁】상여는 사마상여(司馬相如)이다. 사기(史記)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에 “탁왕손(卓王孫)이 딸 탁문군(卓文君)이 밤에 상여에게 도망해서 같이 집에 돌아가니 네 벽만 있었다.”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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