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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구경 

 

 

 

 

 

 

서탑【徐榻】서탑은 서치(徐穉)의 걸상. 후한 때 홍주(洪州)의 태수 진번(陳蕃)이 여간해서는 손님들을 접대하지 않는데 서치에게 만은 그의 덕을 흠모하여 특별히 걸상을 만들어 벽에 걸어놓았다가 그가 오면 앉게 하였다는 데서 나온 것이다.《後漢書 卷五十三 徐穉傳》

서토【西土】서토는 서촉(西蜀) 지방으로 오대 시대 촉(蜀)을 말한다.

서판【書判】서법(書法)과 문장의 우열을 판정하는 일. 당대(唐代)의 관리 선발의 네 가지 기준인 신(身)ㆍ언(言)ㆍ서(書)ㆍ판(判)을 말함. 신당서(新唐書) 선거지(選擧志)에, “凡擇人之法有四 一曰身 言體貌豊偉 二曰言 言言辭辯正 三曰書 言楷法遵美 四曰判 言文理優長 四事皆可取 則先德行 德均以才 才均以勞 得者爲留 不得者爲放…”이라 했음.

서평【西平】서평부원군 한준겸(韓浚謙)을 말한다.

서평부원군【西平府院君】인조(仁祖)의 장인인 한준겸(韓浚謙)의 봉호(封號)이다.

서포【漵浦】지금의 호남성 진양부(辰陽府) 서포현(漵浦縣).

서풍【山西風】장재(將材)다운 인물이 있음을 뜻함. 진한(秦漢) 이래로 산동(山東) 지방에는 재상이 나고, 산서 지방에는 장수가 난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六十九》

서풍【緖風】여풍(餘風), 한풍(寒風). 찬기운이 남아 있는 바람

서풍오인【西風汚人】진(晉) 나라 유량(庾亮)과 왕도(王導) 두 사람이 서로 권세를 다투었는데, 유량은 석두(石頭)에 있고, 왕도는 야성(冶城)에 있었다. 왕도가 앉았을 때에 서풍이 크게 불어 티끌을 날리니 왕도가 부채를 들어 티끌을 막으며, “원규(元規 유량(庾亮)의 자(字))의 티끌이 사람을 더럽히네.” 하였다.

서하【西河】전국시대 위(魏)나라 땅으로 오늘날의 섬서(陝西) 동부와 황하(黃河) 서쪽의 일대인데, 공자의 문인 자하(子夏)가 그곳에서 아들을 잃고 통곡하다 실명(失明)하였다 하여, 자식을 잃은 슬픔을 말할 때 흔히 인용된다.

서하삭거【西河索居】서하는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를 가리키고, 삭거는 벗을 떠나 홀로 외로이 살고 있는 것을 말한다. 자하가 서하에서 노년을 보내던 중 아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상명(喪明)을 하고는 증자(曾子)의 꾸지람을 받자 “내가 벗들을 떠나 혼자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다.[吾離群而索居 亦已久矣]”고 사과했던 고사가 있다. 《禮記 檀弓上》

서하통【西河慟】아들을 잃은 아비의 슬픔을 말한다. 자하(子夏)가 서하(西河)에 있을 때 아들을 잃은 슬픔에 통곡하다가 실명(失明)했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史記 仲尼弟子傳》

서학【書鶴】공치규(孔稚圭)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학서(鶴書)가 언덕 위로 달려온다.” 한 주에 “한(漢) 나라 때 선비를 초빙하는 편지를 마치 학의 머리처럼 쓰는 전자체(篆字體)를 이용한 까닭에 그 편지 명칭을 학두서(鶴頭書)라 했다.” 하였다.

서함구수영용혈【鼠銜窶籔寧容穴】세상에 용신(容身)하기 어려움을 비유한 말. 한(漢) 나라 때 양운(楊惲)의 말에 “쥐가 굴을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또아리를 물었기 때문이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서향각【書香閣】서향각은 춘당대(春塘臺) 북쪽에 있음.

서혈재통【鼠穴纔通】진(秦)나라와 한(韓)나라가 알여(閼與)에서 싸우면서 한(韓)나라가 조(趙)나라에 구원을 청하니 조사(趙奢)가 말하기를, “길이 험하고 좁아서 두 쥐가 구멍에서 싸우는 것 같아서 장수가 용맹한 자 이길 것입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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