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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素女】옛날 신녀(神女). 노래를 잘하였다고 함.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배우기 어려우니 젊을 때에 학문에 힘을 써라. 소년행【少年行】악부(樂府) 잡곡(雜曲)의 가사로, 흔히 소년의, 삶을 경시하고 의리를 중시하며 호쾌한 기분에 맞춰 여행을 즐기는 일을 노래하는 글인데 여기서는 타향에서 풍경을 노래하는 시를 뜻한다. 소노의【小魯意】공자가 동산(東山)에 올라가 노 나라를 작게 여기고 태산(太山)에 올라가 천하를 작게 여겼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孟子 盡心上》 소단【蘇端】소단은 두보(杜甫)와 친지였는데, 두보의 시에 ‘우과소단(雨過蘇端)’이라는 제목으로 지은 시가 있다. 소단【騷壇】소단은 시단(詩壇)을 말한다. 소단조【燒丹竈】신선되는 단약(丹藥)을 연(煉)하여 만드는 것이다. 소단집이【騷壇執耳】문단을 좌우하는 종장(宗匠)의 지위를 말한다. 소당【召棠】시경(詩經) 소남(召南)의 감당(甘棠)을 말한 것이다. 주(周) 나라 소공 석(召公奭)이 남국(南國)을 순시하다가 팥배나무의 밑에서 민원을 처리해 주었는데, 후세의 사람들이 그를 사모하여 그 팥배나무를 차마 베지 못하고 감당지시(甘棠之詩)를 지어 기렸다. 후세에 선정(善政)을 비유하는 고사로 쓰이고 있다. 《史記 卷34 燕召公世家》 소당【燒當】한(漢) 나라 때 서강(西羌) 일파(一派)의 종호(種號)이다. 소대【蘇代】전국 시대 낙양 사람. 소진의 동생으로서 소진처럼 또한 합종ㆍ연횡설을 배웠다. 처음에 연나라에서 벼슬을 하면서 크게 등용되기를 구하다가 자식을 제나에 인질로 맡기고 나중에 송으로 갔는데 송나라가 그를 극진히 대우하였다. 제나라가 송나라를 정벌함에 소대가 편지를 보내 연나라 소왕을 설득하였더니 소왕이 좋다 여기고 소대와 더불어 제나라 칠 것을 도모하여 제나라를 격파하였다. 그러고 나서 제후들에게 합종할 것을 서약하도록 하였다. 이 일로 인해 천하의 모든 나라들이 소씨의 종약을 으뜸으로 여기게 되었다. 소대 또한 이 일로 인해 제후들에게 이름이 나게 되었다. 《史記》 소대궁【昭臺宮】소대궁은 한(漢) 나라 때의 궁전 이름인데, 일찍이 선제(宣帝)의 곽 황후(霍皇后)와 성제(成帝)의 허 황후(許皇后)가 모두 폐(廢)해진 뒤에 거처하던 곳이다. 소동릉【召東陵】동릉은 소평(召平)을 말한다. 사기(史記) 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에 “동릉후는 진(秦) 나라가 망한 뒤 벼슬을 잃게 되었고 따라서 생활이 가난하게 되어 장안성 동쪽에 나아가 외를 심었는데, 그 외의 맛이 매우 훌륭하였으므로 세상에서 동릉과(東陵瓜)라 불렀다.” 하였다. 소동파【蘇東坡】동파는 송(宋)의 문장가 소식(蘇軾)의 호. 소두【小杜】두목(杜牧) 소두【梳頭】머리를 빗다. 소두【召杜】지방민이 태수의 선정을 칭찬한 말. 전한(前漢) 때의 소신신(召信臣)과 후한(後漢)의 두시(杜詩)가 선정을 베풀었기 때문에 지방민들에 의해 소부두모(召父杜母)라고까지 일컬어졌다. 《漢書 召信臣傳ㆍ後漢書 杜詩傳》 소두양주몽【小杜揚州夢】소두는 곧 두목(杜牧)을 가리키는데, 두목이 일찍이 천하에 가장 번화한 양주에서 노닐었던 옛날을 회상한 시에 “십년 만에 양주몽 한 번 깨니, 박명한 청루의 이름만 남았구나[十年一覺揚州夢 贏得靑樓薄倖名]"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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